23. 3. 4. 순간의 실수<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이 왜 울고 있어? 속상해서 그래?"
"아빠가..."
"그냥 차라리 새로 하나 사는 게 낫지 않아? 그걸 언제 다 맞추고 있어?"
"아니야. 하면 될 것 같아."
"확실히 원상태로 맞춘다는 보장도 없고 거기 들이는 시간을 생각해 봐. 한두 조각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다 해? 새로 사줘 그냥"
"한 번 해 보지 뭐. 안되면 말고."
7x7 큐브를 새로 장만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됐다.
조각 하나가 빠져서 그걸 끼운다고 손을 댔다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큐브들이 흩어져 버렸다.
마이너스 손이 아침부터 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아들은 갑자기 울먹이며 절망스러워했고, (내가 보기엔 소생할 기미가 없어 보여) 차라리 그냥 새로 주문하자고 했으나 남편은 '도전'을 해보겠다고 했다.
어쩔 때 나는 포기가 과감한 편이고 남편은 은근히 집념인지 집착인지 끈기인지 모를 것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워낙에 그런 방면에는 소질도 없고 전혀 흥미도 없는지라 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마도 주말 내내 남편과 아들이 매달려야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조각이 다 합쳐서 몇 개라더라?
설마 나까지 끌어들이지는 않겠지.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일찌감치 나는 그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딸도 남의 일 보듯 제 할 일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무작정해 본다고 되겠어? 일단은 흩어진 조각부터 다 모으는 게 먼저 아닐까?"
직접 나서서 조각을 맞출 의향은 전혀 없었지만 내 생각이란 것을 내비칠 수는 있다.
"그래 아빠. 우선 모아놓고 시작하자."
의기소침해 있던 아들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 고단하고 지루한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는 단지 어질러져 있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을 뿐이다.
23. 3. 4. 1단계어느 정도 색깔별로 조각들을 모아놓고 남편과 아들은 이리저리 연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내 생각에는 얼른 영상을 찾아서 보고 따라 하면 쉬울 것 같은데 무작정 작업을 개시하는 것이다.
"영상이 분명히 있을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까 설마? 분명히 있을걸? 그거 보고하면 좀 더 나을 것 같은데, 시간도 덜 걸릴 수도 있고. 우리 아들은 어떻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네 엄마. 근데 나 영상 보면 안 되잖아."
"걱정 마. 이건 그거랑 상관없이 엄마가 찾아보는 거니까."
지난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안타깝게도 영상 시청을 2주일 간 정지당한 아들은 그 와중에도 금기 상항을 결코 잊지 않았다.
10살의 인내력은 대단했다.
23. 3. 4. 2단계"여기 있네. 거봐 내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어. 이거 보고 따라 하면 되겠다. 안 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우와, 엄마 어떻게 찾았어? 진짜 다행이다."
"근데 영어야. 괜찮지?"
지금 그 어린이는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언어의 장벽은 문제가 아니었다.
발음을 들어보니 분명 원어민은 아닌 것 같은데(왠지 30년 전 교과서를 내가 정직하게 읽는 듯한 느낌) 열심히 영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23. 3. 4. 3단계과거 외국인이 하는 종이접기 영상으로 단련된 제2외국어는 아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고, 이미 그 어린이는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배우는 일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영상을 보고 곧잘 따라 하는 것이다.
거의 3시간 반 동안 남편과 아들이 한 우물을 판 결과 그 큐브는 원상 복귀할 수 있었다.
23. 3. 4. 4단계만세!
큐브가 살아났다.
백설공주가 깨어난 모습을 본 일곱 난쟁이 마음이 이리 기쁠까.
두 남자는 한 단 한 단 쌓아 완성할 때마다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테이프로 동여매는 치밀함까지 보이며 무사히 7단까지 마쳤다.
"그래도 한 번 해 봤으니까 다음에 혹시 또 이렇게 분해되면 할 수 있겠지?"
남편은 아들에게 행동으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들 마음은 어떨는지?)
결과물이 그 증거다.
"응. 하니까 정말 되네 아빠?"
아들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23. 3. 4. 5단계 완성내 섣부른 판단이 틀렸다.
큐브의 '큐'자도 모르는 나는 흩어진 그 수많은 조각들을 다시 조립한다는 게 불가능하리라고만 단정했다.
하지만 우리 집 두 남자가 해 낸 것이다.
중간에 혹시라도 (두 남자 모두) 포기할까 봐 조금 못 미더웠는데 그들은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했더니 삭신이 너무 쑤신다. 이제 아빠는 쉬러 갈게."
어정쩡한 걸음으로 거실을 벗어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게 토요일 오후의 휴식은 주어져야 마땅하다.
"이젠 안 부서지게 잘 놔둬야지. 이거 맞추느라 너무 힘들었어."
그리고, (왠지 내 느낌상으로만)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같은 다른 남자 어린이가 있었다.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어쩌면 어제의 그 사건은 그저 힘든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그분이 부활하셨으니, 매일 밤 나는 큐브 맞추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주는 아들에게 '다음에 다음에' 거절의 말을 재생하게 되겠지.
또다시 산산이 흩어지기 전까지는 나는 그 큐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큐브가 살아난 것이 나는 썩 기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