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3. 20. 부화 후 4일 째<사진 임자 = 글임자 >
"노란색이네? '치즈'라고 할래."
"응, 어울린다."
"병아리 한 번 만져 봐도 돼?"
"이제 태어나서 자꾸 만지면 안 돼. 약하니까."
"그래도 한 번 만져볼래."
"너 만지라고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얼마나 빠르다고."
이름 : 치즈
생년월일 : 2023. 3. 17. (금)
성별 : 현재 확인 불가
형제자매 : 없음(외동임)
특이사항 : 다리 색깔이 검은색임
7개를 품었으나 태어난 병아리는 단 한 마리였다.
그러니까 한 마리만 부화에 성공했다.
그 한 마리라도 귀하디 귀한 생명이라 나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3년 만에 보는 친정집 풍경이다.
그래, 하나라도 잘 키워 보자.
"엄마, 병아리 너무 귀엽다. 만져보고 싶은데 너무 빨라."
아이들은 이제 겨우 생후 2일 째인 신생계(?)의 재빠른 달음박질에 끝내 솜털 하나 만져 보지 못했다.
"진짜 빠르지? 어제 태어났다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저렇게 뛰어다니나 몰라. 정말 대단해. 그치?"
"응, 엄마. 아, 한번 만져보고 싶다."
"우선은 멀리서 봐. 병아리는 약하잖아, 만지더라도 조심히 만져야 돼."
"알았어."
어차피 그 병아리는 잡히지 않을 것이었다.
아들과 딸이 둘이서 저희들 주먹만 한 것을 한 번 만져보겠다고 야단이었으나 '치즈'는 어미 닭(친어미가 맞는지는 확인 불가다.) 뒤를 쪼르르 따르며 용케도 잘 피해 다녔다.
나도 그 보송보송한 솜털을 만져보고 싶어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주말에 친정에 간 주목적이 그것이었으나) 자꾸 귀찮게 하면 병아리와 어미 닭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직은 밤에 쌀쌀하니까 그 조그만 것을 주머니에 담아 와 따뜻하고 쾌적한(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만) 우리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아이들은 대환영이겠지만, 친정에서는 분명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병아리니만큼 그대로 어미 품 속에서 크게 하는 게 순리일 듯했다.
천륜을 차마 끊을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처음에 7개의 알을 품고 있다는 희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것들이 다 부화해서 어미 닭 꽁무니를 졸졸 따르는 흐뭇한 풍경을 상상하며 미리부터 얼마나 대견해했는지 모른다.
7개 중에서 두 개는 누가 먹었는지 어쨌는지(간혹 정말 닭들이 달걀을 쪼아 먹는 풍경을 보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다른 닭들이 먹었으면 껍데기라도 조금 남았을 거라고 했는데 전혀 남은 게 없어서 아마 길고양이가 몰래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무단 침입한 길고양이들이 달걀을 훔쳐 가는 광경 또한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지난 주초까지 총 5개의 달걀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치즈'가 태어나던 날, 다른 한 마리는 병아리가 다 된 상태에서 (껍데기를 쪼다가 죽었는지) 죽어 있었고, 몇 개는 이미 상한 달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치즈'는 손 귀한 집 병아리인 셈이다.
저출산의 심각성은 친정집 닭의 세계에서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
"엄마, 병아리 좀 만져보려고 하니까 어미 닭이 날 쪼려고 해."
아들은 속상해했다.
겁도 냈다.
"당연하지. 새끼 해칠까 봐 그런 거야. 엄마들은 다 그래. 자식 지키려고. 솔직히 사람이 더 힘이 세지 몸집도 크고 닭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다 자기 몸 다 바쳐서 새끼를 보호하는 거지, 본능적으로 말이야. 신기하지?"
"엄마도 그래?"
"그럼, 당연하지, 너희도 나중에 부모가 돼 보면 알게 될 거야. 아마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대부분 그럴 거야."
"누나는 아기 안 낳는다고 했는데?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느닷없이 아들이 제 누나의 비혼 선언을 언급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어미 닭 품 속으로 파고들어 거짓말처럼 숨어버린다.
어미도 시치미를 떼고 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감쪽같다.
저런 게 본능인 걸까?
위협을 느끼면 어미가 저를 보호해 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 새끼를 어떻게든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 사람 눈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닭들(그러나 어찌 보면 사람보다 더 위대한 모성애마저 지녔다. 또 어쩔 땐 사람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 닭이 사람보다도 낫다고 느낄 때도 있다.)에게 경외심마저 든다.
그래, 닭도 제 새끼 돌보고 보호할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종종, 본능 말고 뭐가 있을까 싶은 동물들 앞에서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깊은 생각에 감길 때가 있다.
어미 된 입장에서 내가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제 새끼를 사랑으로 끝까지 품어 주고 생명의 위협 앞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그 마음, 동물이나 인간이나 다를 것 하나 없다고.
치즈야,
공부하란 말은 안 하마.
다른 건 하나도 안 바랄게,
건강이 최고란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내 바람은 그것뿐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