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나의 기쁨, 나의 번뇌
내가 사랑하는 너
2023. 4. 26. 봄날< 사진 임자 = 글임자 >
"얘들아, 엄마가 공개 수업에 갈까? 말까?"
이미 가겠다고 온라인상으로 회신도 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부모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제보를 받고 부랴부랴 ) 뒤늦게 아이들에게 의향을 물었다.
"엄마가 당연히 와야지."
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개수업 엄마 참석 의무론'을 펼쳤고,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하면 되지.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해!"
라며 아들은 '공개수업 엄마 참석 자유의지론'을 펼쳤다, 다소 불손하게.
그래,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만...
아들이 예상과는 달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의 애교스러운 아들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얘가 또 왜 이런다니?
도대체 뭐가 문제지?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난 아들에게 알밤을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었다.
"당연히 엄마가 와야지. 엄마가 안 오면 누가 와? 꼭 와야 해! 와서 나 수업하는 거 봐야지."
라고 반응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이젠 엄마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오지 말라고 만류하더라도 조용히 눈에 안 띄게 다녀가기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예상 못한 일이다.
사실 그날 아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므로 아들은 내게 약간 반감이 있던 상태였다.
평소의 아들이라면 애교를 부리면서 그날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텐데(그렇게 믿는다.) 너무 데면데면하게 구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아니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어디서 기분이 상한 거지?
지은 죄는 있는 것 같은데 당최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보통은, 특히나 기분이 좋을 때 아들은 그렇게 내게 애교스러울 수가 없다.
"엄마. 뽀뽀~"
이러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쭉 내민다.
"근데 우리 아들, 이는 닦으셨을까?"
모성애도 구강 위생 앞에서는 멈칫하는 법이다.
"엄마 나 안 사랑해? 그깟 이 좀 안 닦았다고 뽀뽀 안 할 거야?"
"아니, 엄마는 우리 아들 사랑하지. 근데 이왕이면 이를 먼저 닦았으면 좋겠다 이거지."
"흥, 엄만 날 사랑한다면서 뽀뽀도 안 해주고!"
어쩜 순식간에 그렇게 돌변할 수가 있을까 싶게 아들은 360도 다른 태도를 보인다.
"솔직히, 네가 먼저 뽀뽀하자고 그런 거잖아. 그럼 양심이 있다면. 아니지, 그건 기본 예의야.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는 닦자, 우리. 먼저 이를 닦고 뽀뽀하자. 입안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지 너 몰라? 네 입술에 침이 묻어있을지도 모르는데 엄만 싫어! 엄마는 너는 사랑하지만 네 침에 있는 세균은 사랑하지 않아. 그리고 아기 때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이 안 닦으면 솔직히 정말 입 냄새 심해. 네가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9년이나 지났어. 엄마 비위 약한 거 너도 잘 알잖아?"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대신 숨을 3초쯤 참고 찰나의 뽀뽀를 마친다.
아무 상관없는 눈까지 질끈 감기는 것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들이 사랑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아들에게 있는 세균까지는 글쎄... 그 정도까지는 아직 아니다.
내게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뭇사람들이 힐난하더라도 달게 받겠다.
나는 그저 단지 위생적인 모성애를 추구할 뿐이다.
"아들아, 엄마는 꾹 참을 수 있지만 나중에 너 여자친구 생기면 그땐 꼭 양치 먼저 하거라. 입 냄새나는 남자친구 좋아할 여자는 아마 없을 거야. 간혹 그 입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진다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더라마는 대개는 안 좋아할 거야. 적극 참고하기 바란다. 이 엄마 말을 금과옥조로 알고 새겨듣거라, 반드시."
라고 언젠가는 말해 줄 날이 오리니.
어쨌거나 엄마가 공개수업에 왔으면 좋겠는지 아닌지 의견을 묻다가 아들의 뜻밖의 반응에 나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잘 나가다가도 느닷없이 엄마 속을 뒤집고, 말도 잘 안 듣고, 평소와 다르게 삐딱선을 타기도 한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질풍노도'라고 한다지 아마?
"우리 아들이 왜 갑자기 엄마한테 그렇게 말을 할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들은 내게 서운한 감정이 분명히 있었다.
나와 얘기하는 내내 굳은 얼굴로 눈도 안 마주치던 아들에게 급기야 내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다소 유치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
"근데 우리 아들 배는 안 고파? 간식 먹을래?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건빵 어때?"
아들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치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침묵을 고집했다.
"오늘은 특별히 두 봉지 먹을까? 기분도 안 좋은데?"
원 플러스 원은 참을 수 없는 아들.
"... 근데 정말 두 봉지 먹을 수 있어?"
슬슬 살얼음이 깨지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데 먹어야지!"
"알았어. 그럼 엄마 성의를 생각해서 두 봉지 먹을게."
누가 누구를 생각해 준다는 건지 참.
"엄마, 그거 먹고' 가레오'도 하나 어때?"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 아들이다.
질풍노도엔 건빵이 특효약이다.
단체 생활을 하는 어딜 가면 그것이 많이 나온다던데...
다행히 뒤끝이 없는 성격의 아들이라 훈훈하게 마무리를 짓고 시간에 늦지 않게 교실 잘 찾아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아들은 엄마가 학교에서 미아가 되지 않도록 교실 배치도까지 그려가며 내게 제 반의 위치를 단단히 주입시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사를 제치고 가겠다고 약속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