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장인에게 물려주는 그것
드레스 셔츠 입고 밭에 가시는 분
2023. 5.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가 자기 옷 잘 입고 계셔."
"무슨 소리야?"
"저번에 자기가 안 입는다는 그 옷 말이야."
"그걸 왜 아버님이 입고 계셔?"
"내가 일할 때 편히 입으려고 집에 갖다 놨는데 아빠가 입고 계시더라?"
"그랬어?"
그런 말이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은 만들면 말이 되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효서(孝壻)다 효서.
효부 소리 듣는 며느리만 있으란 법 있나, 효서 소리 듣는 사위도 있어야지.
"몇 년 동안 안 입는 옷은 좀 정리하는 게 어때? 새 거는 헌 옷 수거함에 넣든지 하고 낡은 건 버리든지 내가 집에 가서 일할 때 입든지 하면 좋겠는데."
"알았어."
저 대화를 주고받은 지가 까마득한 옛날이다.
과거, 기원전 2,000년 경에 그 사람 몰래 완전 범죄를 꿈꾸며 '꼴도 보기 싫은' 옷을 몇 벌 처리한 적이 있다.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옷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고 오래돼서 빨아도 빨아도 낡은 느낌이 가지실 않았고(헌 옷을 새 옷처럼 만드는 마법 같은 기술 같은 것도 내게는 없었으므로) 그 사람의 관심이 시들해진 틈을 타, 절묘하게, 철저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러나 하늘과 땅과 나만은 알 수 있게 해치웠다. 그런데 하필이면 느닷없이 없애버린 그 옷을 갑자기 그 사람이 찾는 바람에 나의 범행은 들통나고 말았던 것이다.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마음대로 버렸어?"
라며 그 사람은 내게 얼마나 있는 대로 화를 냈었던가.
물론 주인 허락 없이 버린 잘못은 인정한다.
궁색한 변명이라도 하자면 너무 오랫동안 안 입고 변색도 되고 했길래 그냥 버린 것인데.
무심한 성격인 줄로만 알았더니 엉뚱한 곳에서 사라진 자신의 소유물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집요함이 다 있었다니.
입지도 않고 모셔 두기만 하던 사람의 행태로는 여간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으나 지은 죄가 있는 누구는 따박따박 말대꾸할 수 없었다.
"그 옷들 안 입은 지가 벌써 몇 년인데 그래?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갑자기 왜 그래?"
라고 몇 마디 했다가 된통 당했다.
그 옷에 꿀이라도 묻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주머니에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것이라도 들어있었던 걸까?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천 원짜리 한 장 발견하는 그런 횡재 따위는 내게 일어나지도 않았다 물론.
농사일을 하다 보면 옷을 빨아도 빨아도 깨끗해지지 않을 때도 있고 금방 해지는 수가 많다. 그래서 친척들이나 오빠들, 동생이 안 입는 옷들을 모아서 일할 때 입고 버리시라고 종종 집으로 가져온다. 그러면 대개는 마르고 닳도록 입다가 도무지 못 입을 상태가 되면 그때서야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헌 옷 수거함에 넣기도 그러니까 내가 일할 때 입어야겠다. 넉넉해서 편하겠다. 내가 입어도 되지?"
가끔 그 사람이 안 입는 옷을 정리할 때면 나는 미리 선수를 친다.
그 사람의 슬림핏은 내게 주스핏으로 거듭난다.
"그냥 버리지 뭐 하러 그런 걸 입어?"
그 사람은 아들의 다 해진 러닝이라도 악착같이 챙겨가는 엄마 보듯 나를 보았다.
"그냥 버리긴 아깝잖아. 어차피 일할 때 막 입을 옷도 필요해. 그냥 바로 버리는 것보다 입을 만큼 입고 버리는 게 좋지."
그 사람의 옷 정리와 관련해 최대 수혜자는 아마도 나와 우리 아빠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 사위 옷을 입고 밭에 계신 아빠를 보다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외모도 체격도 어느 곳 하나 닮은 데라곤 없지만 익숙한 그 옷차림에 갑자기 그 사람이 들이닥친 줄 알고 착각을 하곤 한다.
학습된 옷매무새가 이렇게나 무섭다.
비록 새것은 아니더라도 드레스셔츠를 착용하고 들일을 나가시는 시골 할아버지라니.
이건 무슨 칼라에 해당할까?
굳이 또 갖다 붙이자면 블화칼라(블루칼라+화이트칼라) 정도 될까?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어내며 어제도 나는 그 사람의 여름옷 한 벌을 득템 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열 살인 아들도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다.
아들의 취향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입지 않는 새 옷들을 잘 모셔 두고 나는 어서 빨리 아들이 제 아빠만큼 몸집이 커지기를 또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