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있는 자격증만 해도 6~7개, 모두 바로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또 새로운 민간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인강을 듣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가진 자격증들은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만족할만한' 것인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인데 그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많이'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니 딱히 욕심이 많다고 보기도 어렵다.
젊은 시절은 살림과 육아로 다 보내고 경력단절에서 다시 현역으로 뛰어든 일이 하필 4대 보험도 가입되지 않는 시간제 파트타임이었는데 그것이 그 당시에는 최선으로 보였었다. 살림을 하면서 친정과 시댁의 대소사를 다 챙기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시간당 급여로 계산해 보아도 꽤 괜찮아 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단, 한 달 총급여로 봤을 때는 어디다 내세울만한 벌이는 못 된다.
코로나 시국에는 그 자리마저 보장되지 않았고 뭔가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했기에 1년 동안 전일제 직업을 가져 보았다. 결과는 '못 하겠다'였다.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을 것 같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저질 체력과 돌보아야 할 강아지들이다.
강아지들을 하루종일 빈 집에 방치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처럼 하루에 서너 시간씩 일하는 파트타임이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할 것.
남편의 정년퇴직이 2024년 말이니 이제 2년도 남지 않았다. 3년 만기인 변동금리 주택담보 대출의 만기일이 돌아오면 남편이 지금의 직장에 근무할 때와 달라진 신용 상태 때문에 대출 연장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뭐라도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자격들 중 뭐든 궁하면 다 써먹을 수는 있지만 아직은 다른 가능성을 더 찾아보고 싶다.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개념들이 정리가 되고 전혀 모르고 살았던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 흥미롭다. '데이터 라벨러'라는 생소한 직업을 알게 되고 '데이터 라벨링'이 어떤 일인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 사람들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데이터 라벨러'들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를 가공해서 컴퓨터가 학습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수적이며 그것은 모두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처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가공하여 학습시키는가에 달려있다.
영어공부를 싫어하는 초등학생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영어를 뭐 하러 배워요? 구글에 물어보면 되는데요."
"영어 몰라도 돼요. 번역기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해도 궁색한 나의 답변은 이랬다, "번역기는 실제로 사람이 쓰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아서 이상한 말이 되기도 해." "상대방은 너한테 얘기하고 바로 대답을 기다리는데 언제 휴대폰 들여다보고 검색하고 있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늘 마음속으로는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의 수준을 향상하려는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음성을 듣고 바로바로 텍스트로 변환시키고 원하는 외국어로 번역을 해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넷플릭스 영화만 봐도 등장인물의 음성을 원하는 언어로 번역해서 바로 텍스트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한국어로 말하면 바로 그 문장을 외국어로 보여주고 더 나아가 내가 말한 것을 설정해 놓은 목소리로 원하는 언어로 통역을 해주는 어플도 나올 것이다. 비슷한 작업들이 이미 시작되었고 활용하고 있는 곳도 있으며(영화,'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휴대폰에 대고 중국어로 말을 하면 AI의 목소리가 한국어로 통역을 해준다)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는 과정들이 사람들의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학생들에게 대답해 줄 말이 생각났다. 왜 영어를 (혹은 다른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냐고?
번역기든 인공지능이든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사람이 말하듯 자연스러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하고 그만큼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하나 더하자면 사람은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싶을 때가 있다. 기계를 한 번 거쳐서 나온 목소리나 화면을 통해서 읽어야 하는 문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그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까?
"아뇨. 저는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기계로 소통하고 살아도 돼요."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실제로 아이들은 계속 영어학습 무용론으로 밀고 나간다.
"그건 지금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생각이지. 나중엔 어떻게 바뀔지 몰라. 그리고 어플만 의지하고 있다가 배터리 나가면? 폰을 잃어버리면 또 어떡할 건데?" ㅋㅋㅋ
그래도 아이들은 꿋꿋하게 대꾸한다, "외국 안 나가면 돼요." "외국인 안 만나면 돼요." 등등...
"그렇게 하기 싫은데 왜 나와서 나한테 항의하는 건데?"
"엄마가 영어 안 하면 가만 안 둔대요!"
"그럼, 그냥 해!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나...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가 하는 의심이 가끔 든다.
데이터 라벨링 강의를 들으면서 라벨링 실습을 한다.
이미지, 영상, 텍스트, 음성 데이터들을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나 영상 속에서 특정 사물이나 사람, 동물 등을 기계가 인식할 수 있도록 박스 안에 넣고(바운딩) 이름을 붙여준다(태깅). 영상 속 대화를 듣고 문장을 적고 그 문장이 나타내는 감정을 골라서 이름 붙여준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위험 신호인지 분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위치의 신체 부위에 이름을 붙여준다. 골프 스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자세 교정을 코치해 주는 어플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포즈가 나타난 이미지에서 관절의 포인트를 찾아 점을 찍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제 오후엔 번역 어플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으로 대화체와 비대화체의 문장을 듣고 구간별로 지정을 해서 들리는 대로 적는 것(전사)을 했다. '듣고 타이핑하는 거라면 자신 있지!'라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웬걸, 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다. 문제는 음성이 들리는 주파수의 구간을 나는 분명히 맞게 설정했고 반복해서 들어도 또렷이 들리는데 구간을 다시 늘리라거나 줄이라는 식으로 계속 반려가 되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분명 소리가 들리는 영역을 바로 잡은 것 같은데, 확대해서 보아도 맞는데, 계속 반려가 되어 다시 설정하라니 0.1초 딘위로 늘리거나 줄여도 같은 이유로 퇴짜를 맞고 조금 더 바를 움직여서 조정하면 앞에서 작업했던 구간과 겹친다는 맨트가 돌아오고...
같은 문장이 통과가 되지 않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결국 10번의 반려를 받고서야 실습을 중단해 버렸다.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아아악! 못 해 먹겠네, 정말!' 입으로는 작게 한숨만 푹푹 내쉬며 "아놔... 에이씨..."를 연발했다. 사실 소리라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소파에 드러누운 채 귀는 나의 움직임과 소리를 향해 활짝 열어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댕댕이 두 녀석들이 놀라 짖어댈까 봐 소심하게...
아, 아까운 내 시간... 요가나 하자. 노트북 앞에서 씨름하느라 눈이 빠질 것 같고 어깨여 목이 묵지근하니 힘들었다.
이것도 나한테 안 맞는 일인가?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갈 데까지 가보는 거지 뭐. 2월은 라벨링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으니 해 보는 거다. 막상 일거리가 많이 없다는 의견들도 많지만 그래도 해 보자.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니...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해보자.
지금 내겐 휴식이 필요해.
오늘 오후, 어제 하다 만 작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또 같은 구간에서 계속 반려가 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아니지 싶어서 교육사이트의 카톡 알림톡으로 들어가 문의 사항을 남기려고 열심히 문자를 입력했다. 왜 이번 실습에는 정답보기가 없는 거냐고 입력하다가 시선이 노트북 화면으로 갔다. 그러다 뭔가 생각이 나서 스크롤바를 올렸더니 헉! '정답보기'가 가려져 있었던 것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정답을 확인해 보니 한 칸에 전사해야 할 내용을 두 개로 나누어서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작업 전 가이드에서 분명히 알려준 것, 대화체 문장은 한 사람이 여러 문장을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몇 개의 문장을 모두 하나의 구간으로 지정하고 한꺼번에 전사해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비대화체 문장처럼 한 문장 단위로 끊어서 구간 설정을 하고 각각 받아 적고 있었으니...
아니 왜 어제는 정답보기를 찾아볼 생각도 안 한 거냐고! 단 1분이면 확인하고 수정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몇 시간 동안 울화통 터져가며 이건 내 일이 아닌 게 분명한 거라며 씩씩대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다. 의욕만 앞서고 꼼꼼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컴퓨터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강의를 듣고 실습 하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나도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앞 동에 사는 친구가 혼자 집에 있으면서 말하는 스피커 "지니"를 켜놓고 신기하고 재밌다며 괜히 말을 걸어보곤 한다고 했다.
"지니야, 나 심심해."
"저런, 심심하세요? 재미있는 TV드라마를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전엔 "신기하군! 세상 좋아졌네!"라며 깔깔대고 웃던 내가 이제는 "저게 다 데이터 라벨링을 통해 학습된 결과물이야." 라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