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하고 나면 쉬워진다

새 학년 그리고 새 봄의 시작

by 엘 리브로

새롭고 낯선 그 무언가를 시작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편은 아니다.

'힘들면 어쩌나,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는 '일단 해보자. 남들 다 하는 거 나라고 왜 못 해?' 하는 생각이 더 강하다. 처음의 흥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그런데 쉽게 시작하는 나에게도 늘 어려운 것이 있다면 새 학년이 되어서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과의 첫 수업이다. 첫 대면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뭔가 초조해지고 일상의 많은 일들에서 집중력이 흐려지고 산만해지고 만다. 머릿속에선 온통 수업 자료로 무얼 만들어볼까 교재는 무엇으로 정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쉼 없이 돌아간다.

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과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이 섞이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교재 선정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신학기다.


첫 수업 전날, 긴장감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방식은 '잘하려고 애쓰지 않기'이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노력은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고야 만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에 오히려 손을 놔버리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일부러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심신을 편하게 하려 한다.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처음 보는 얼굴들의 이름을 외우기에도 바쁘며 저마다 선행학습의 정도가 다르고 실력의 차이가 많이 나니 수준을 파악하느라 한동안은 정신이 없고 긴장할 틈도 없다.

이번 새 학년의 첫 수업도 그렇게 무탈하게 지나갔다. 일단 시작했으니 다음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하면 된다.




요즈음 신체적인 활동량이 너무 적어서 활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뭔가 운동이라도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살던 동네와 달리 단지 밖으로 나가서 걸을만한 곳이 없는 유배지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활동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옆동네의 공원에 가는 것은 주 1회 정도쯤이고 반려견들과의 산책이라서 운동이 되지도 않는다.

공원이라는 게 자고로 아무 때나 나가고 싶으면 바로 걸어서 갈 수 있어야 매일 운동을 할 수 있을 텐데 한 번 나가려면 차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유튜브를 활용해서 유산소 운동이나 요가도 자주 따라 해 보려고는 하지만 사실 재미가 없다.


헬스장에 가서도 혼자서 TV 모니터나 폰을 들여다보면서 걷거나 기구를 이용해서 근력운동을 하는 것은 질색이었던 나는 댄스나 요가처럼 여럿이 모여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아가며 하는 운동을 좋아했다.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새해가 되면서부터 실내에만 머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고 주 2회 초등학교에서 수업하는 것과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 말고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는 생활이 두 달 정도 이어져 왔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을 할 때에는 어서 12월 말이 되어서 계약기간이 끝나길 간절히 바랐었는데 겨우 두 달 만에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나이 들수록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고 난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지만, 온라인상에서가 아니라 직접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언가를 배우는 활동은 적당한 경쟁심과 친목이 있고 서로 이끌어주며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문화센터에 등록을 하게 됐다. 차를 타고 10분을 나가면 피트니스 센터나 필라테스, 주짓수 도장 같은 운동 시설이 있기는 하나 의욕이 앞서는 마음과 달리 여기저기 통증을 달고 사는 나에게 맞는 것은 댄스 밖에 없는 것 같다.

십수 년 전에 배웠던 벨리댄스를 다시 하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왕복 한 시간에 외출준비까지 하면서 오전 시간을 너무 버리는 것 같았고, 정말 좋아했고 열심히 했던 벨리댄스지만 협회에 따라 춤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기존 회원들의 텃새에 거울조차 제대로 안 보이는 위치에 서야 한다면 어쩌지? 하는 염려까지... (실제로 그런 텃새 문화가 있는 곳을 보았고 듣기도 했다)


그러나 망설여지기 때문에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자꾸만 핑계를 대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은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못하다.

두 번 수업에 참여했고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괜찮았다. 기본 동작을 거의 알고 있어서 베이직 반이 아닌 테크닉 반을 신청했고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안무의 순서는 잘 외워지지 않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곧 외워지겠지.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회원 수가 많지 않아서 거울에 비치는 강사의 동작과 나의 동작이 가려지는 부분 없이 잘 보이니 따라 하기에 편하다.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앞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은 쉽다. 한 걸음에 너무 많이 가려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역시 시작이 반이다.

나의 봄이 시작되었다.

봄이 짙어가면서 나의 새로운 시작들도 하나둘씩 늘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