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빼꼼이를 일주일여 만에 다시 보았다는 남편의 말에 뛸 듯이 기뻤다.
밤늦은 시각, 개들에게 사료와 간식과 물을 챙겨주고 집에 들어오는 남편의 첫마디가 "빼꼼이 다시 나왔어!"였다.
"그래? 다행이다. 눈은? 봤어?"
"응. 진드기가 엄청 커졌던데 떼어지지도 않고 녀석이 자꾸 얼굴을 돌리며 피해버리더라고."
남편의 지인인 수의사에게 부탁해서 씹어먹는 외부기생충약을 주문했다.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드기 예방약으로 우리 집 강아지들도 봄, 여름에 먹여왔던 것이라 먹여보기로 했다. 동물병원에서 한 알에 몇 만 원씩 주고 샀던 초코향이 나는 그 약을 우리 집 강아지들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주문한 약을 받으려면 며칠 기다려야 하기에 , 빼꼼이의 덩치에는 용량이 너무 적은. 그나마 외부진드기 구제약도 아닌 심장사상충약을 으깨서 (이건 츄어블이 아니라서)요거트에 섞어 먹였다.
며칠 뒤 주문한 약을 받아서 먹였고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는 동안 또 빼꼼이는 공장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옮겨져 버렸다.
남편이나 내가 흰둥이에게 갈 때마다 흰둥이가 펄쩍거리며 뛸 때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울부짖는 빼꼼이의 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그리고 장마가 한창인 어느 날,오랜만에 다시 출입문쪽으로 옮겨진빼꼼이를 만날 수 있었다. 눈꺼풀 안쪽에 꼭 달라붙어 있던 진드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빼꼼이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서서 문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장마기간 내내 남편은 밤에 비가 잠깐 그친 틈에 한 번씩 가서 들여다보았고,나는 한동안 흰둥이와 빼꼼이, 그리고 룰루와 랄라에 대해서도 모른 체하려고 애썼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끓어오르는 연민과 견주들을 향한 분노감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룰루와 랄라는 공단의 다른 개들과는 달리 목줄에 묶여있지 않고 펜스에 둘러싸인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놓인 좁은 개집은 한여름 날씨에 가마솥처럼 달궈져 있을 것이며 시멘트바닥의 열기는 또 얼마나 뜨거울 것인가.
물그릇의 물이 다 말라있는 경우도 많았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삽살개인 룰루의 털이 엄청 자라 있어서 얼마나 숨 막히게 더울까 생각해서 견주에게 톡을 보낸 일이 있었다. 털을 잘라주셔야 한다고... 행여나 기분 상할까 글자 하나하나의 선택에 고민해 가며 부탁을 했다.
나와 같은 주거 단지에 살고 있는 그는 "그렇잖아도 여름에 털을 깎을 계획"이라는 답변을 보내주었었다.
길고도 길었던 장마가 끝나갈 무렵에 이르러 룰루와 랄라는 축 늘어져 간식조차 받아먹을 기운이 없을 지경이 되었고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비를 맞아 말 그대로 물에 젖은 솜이 된 털은 한낮엔 직사광선을 그대로 다 받고서 얼마나 뜨거워졌을 것인가.그 무거운 젖은 솜을 온몸에 짊어진 룰루는 여름 내내 힘들어 보였다. 얼굴의 털도 길게 자라 눈코까지도 뒤덮여 있었다.
7월이 끝나가는 어느 금요일 저녁 결심했다. 견주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내일은 개를 데리고 나가 미용을 해야겠다고, 무단침입이니 사유재산 어쩌고 해 봐라, 동물학대로 신고해 버리겠다 생각하며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데 밤늦게 들어온 남편은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룰루 털 깎았던데!"라며 들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정말? 와아 다행이다!" 큰 소리로 환호하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눈에 붙은 진드기가 사라진 빼꼼이와 무거운 털을 자른 룰루
그리고 8월, 거의 매일 룰루와 랄라를 보고 들어오던 남편이 어느 날 랄라의 눈에 눈곱이 잔뜩 끼어있더라는 말을 했다.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눈이 더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은 나는 낮 시간에 가보았다.
랄라의 왼쪽 눈의 눈꺼풀이 드러 붙어서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꼬리를 흔들어대며 껑충거리고 컹컹 짖는 그 애들에게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제대로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미운 감정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랄라의 눈을 사진 찍고 동물병원에 가서 원장에게 보여주었다. 직접 봐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당연한 말을 들었지만 남의 개라서 데려올 수 없다고 설명하고 우선 먹는 약과 안약을 달라고 했다.
1주일 분의 약을 먹여보고도 차도가 안 보이면 내원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날 오후부터 아침저녁으로 가서 약을 먹였다. 하지만 안약을 넣어야 빨리 나을 텐데 창살문 밖에서는 넣어줄 수가 없었다. 요거트에 섞은 약은 펜스 아래의 틈새로 넣어서 먹였지만 눈 쪽으로는 손이 가면 재빠르게 피해버렸다.
주말 동안 먹는 약만 아침저녁으로 먹였지만 낫는 기미가 안 보이자 월요일 오전에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나와 안면이 있는 견주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사장인지 직원인지, 견주인지 그저 회사의 개를 돌보고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제대로 모른다.
오다가다 지나치며 강아지들이 예뻐서 한 번씩 보는 이웃이라고 내 소개를 하고 나서, 강아지 한 녀석의 눈에 계속 눈곱이 끼고 불편해 보여서 약을 지어왔다고, 안약을 하루에 3~4회 넣어주시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사장인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남자는 내가 내민 작은 안약병을 받아 들고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1주일 분량의 약을 다 먹이는 동안 어떤 날은 눈곱을 닦아주었는지 눈이 말끔했고 또 어떤 날은 다시 누런 눈곱이 온 눈을 다 덮고 있었다. 안약을 잘 넣어주고 있는지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그러다가 괜한 참견으로 견주의 거친 항의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