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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Sep 26. 2023

떠돌이 백구의 운명

우리 동네 흰둥이 10

9월 둘째 일요일 오전.

입주민 오픈 채팅방에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줄이 풀린 백구가 단지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며 자기 집 강아지에게 달려들어서 산책을 못 하고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 강아지는 목줄을 두르고 있었고 주변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에  해가 기울면 우리 집 강아지들도 산책을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떠돌이 개가 있으려나 내심 신경이 쓰였다.


일요일 오후.

해는 아직 떠 있으나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서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갔다.

단지 내의 화단과 산책로 주변을 기웃거리며 열심히 킁킁거리던 강아지들의 레이더에 저 멀리서 사뿐사뿐 뛰어다니는 떠돌이 백구가 걸려들자 두 녀석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짖는 소리에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 개가 다가오자 순간 긴장이 됐다. 그 개의 성향을 모르니 작은 개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야 했다. 단톡방에  올려진 내용으로는 놀기 위해서 달려든 것인지 공격적으로 달려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강아지를 각자 하나씩 안아 들었고,  한 녀석이 맹렬히 짖어대는 통에 그 개를 자극할 수가 있어서 얼른 서로가 볼 수 없는 코너로 이동했다.


떠돌이 개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 개와 아이들을 보며 걷고 있는 나와 남편 옆에서 우리 집 강아지들은 점차 흥분이 가라앉았다.  풀냄새를 맡으며 걸으면서 한 번씩 그쪽을 흘끗 쳐다보기도 했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어느 중년 남자가 자기 강아지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혼잣말처럼, 그러나 옆에서 들으라는 듯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쏘아붙이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저게 늑대 새끼지, 어디!"


"어딜 봐서 늑대야? 저렇게 순딩한 얼굴에 똥꼬 발랄한데?"

내 말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백구를 향한 시선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우리 집 강아지들을  집에 들여놓고 다시 나간 나와 남편은 아까 봤던 떠돌이 백구가 어딨는지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몇몇 아이들이 에워싸고 쓰다듬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몇몇은 불쌍하다, 안 됐다며 촉촉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백구는 지저분해진 털이 비에 젖어 더 처량해 보였고 얼마나 굶주렸는지 갈비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남편이 동네 강아지들을 챙기느라 차에 싣고 다니는 사료를 꺼내서 줬지만 백구는 먹지 않았고 개껌만 받아먹었다.

다시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신나게 뛰노는 백구를 뒤로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입주민 단톡방엔 떠돌이 개가 위험해 보이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 떠돌이 백구


최근 한 달쯤 전에 내가 반려견 훈련법에 대해서, 그리고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개를 자극해서 더 불쾌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글을 올렸다가 수백 개의 댓글들이 달리고 톡방을 나가버리는 세대가 수십 명이나 있었다.

개에 대한 얘기라면 물어뜯듯이 달려드는 개 혐오자들과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 간의 대립구도가 중간에서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피로감을 주었던 것이다.

말꼬리를 잡고 맘대로 해석하여 비난하는 사람들의 댓글에 일일이 해명의 글을 쓰는 것도 중노동이었다.

그러니 이번 떠돌이 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글을 쓴 사람들에게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덩치만 컸지 순한 어린양 같다는 말을 방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함구할 수밖에...


남편과 나는 룰루, 랄라에게 가서 랄라의 눈 염증을 확인하고 약을 먹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법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간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는 백구를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어디서 났는지 초록색 노끈을 백구의 목줄에 걸어서 잡고 있었다.

"얘들아, 왜 여기까지 나왔어?"

"어른들이 얘를 싫어해서요. 막 나가라고 화내요."

"순한 애인데 참 안 됐다... 혹시 백구 놔두고 집에 갈 때는 노끈을 꼭 풀어줘야 해, 알았지? 어디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네!"

우리 부부는 룰루와 랄라에게 먹이고 온 심장사상충과 진드기를 동시에 구제하는 약을 떠돌이 백구에게도 먹였다. 초코향이 나는 씹어먹는 그 약을 개들은 모두 좋아하고 그 백구도 잘 씹어 먹었다.

동네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놀고 있는 떠돌이 백구


일요일 밤.

단지 내의 산책로를 돌며 걷기 운동을 하던 중 오후에 봤던 떠돌이 백구를 다시 봤다. 주민들 중 젊은 부부가 간식을 먹이고 있었다.

우린 각자 하루종일 보고 들었던 백구의 모습과 근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백구에게 관심을 갖고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었고 다들 집에서 거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키우고 있는 소형 강아지들이 예민하니 함께 둘 수가 없었다.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도 모두 집에 들어가 버리고 인적이 드문드문해지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저 아이는 어디에서 맘 편히 몸을 누이고 쉴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을 나누며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우리는 한참 동안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여운 백구는 더 이상 사료와 간식도 먹지 않고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앞발로 제 앞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들의 다리와 팔을 톡톡 건드렸다.

젊은 부부 중 여자가 말했다, "동물 보호소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고지한 후에 안락사당할 텐데요?"라는 나의 대답에 그 여자는 다시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각자 어두운 표정만 지을 뿐...

어둠이 내려앉은 텅 빈 단지 안에서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듯 시무룩하니 앉아있는 백구의 모습


부부는 공동현관 입구의 한쪽 구석에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놓아두고 집으로 들어갔고 백구도 슬그머니 풀숲 쪽으로 사라졌다.

 산책로를 다시 돌며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 넓은 공간에서 저 가여운 생명을 거둘만한 한 평의 공간도 내줄 수가 없는 것인가... '

개를 혐오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맘대로 돌아다니게 하는 것보다는 어느 한 공간에 자리를 마련해 고 (묶어 두든지 펜스를 둘러치든지), 개를 좋아하는 주민들이 먹을 것을 챙겨주고, 돌아가며 산책을 시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키울 수 없는 어린아이들도 매일 와서 돌보고 놀아주면 서로 좋지 않을까?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도 반대가 심할 주민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밤은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우리 집 공동현관 앞에도 물그릇과 사료 그릇이 놓여 있었다.


월요일 낮.

출근길에 보니 편의점 옆 야외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 앞에 어제의 그 떠돌이 백구가 얌전히 앉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얻어먹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단지 내에서 보이지 않고 물그릇과 사료그릇도 그대로 있었는데, 어디서 잠을 자고 다시 나타난 것인지 몰라도 오후엔 다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놀아주겠구나 생각했다.


월요일 오후.

퇴근하여 집 앞 주차라인에 차를 대려고 우리 동으로 들어서는데 쓰레기장 옆, 산책로 입구 쪽에 몇몇 주민들이 서서 열심히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더니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백구, 보호소로 실어갔어요."

"네? 언제요?"

"방금 전에요."

"아니, 벌써요? 쉽게 잡혀요?"

"제 발로 들어가던데요."

서 있는 주민들 중 한 여자는 전에 동물 보호단체에서 일했다며 백구의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동물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고도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속 백구는 제 발로 들어간 케이지 안에서 두려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누가 신고한 거예요? 주민들이 함께 돌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말에 그는 다시 대답했다. "개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들이 그러라고 가만히 있겠어요?"

우린 한동안 서서 안타까운 마음을 서로 나누고 눈시울을 붉혔다.

누군가 말했다, "죽게 되겠죠?"

"거의 그렇죠. 가장 많이 안락사당하는 게 진도견 믹스들이에요. 게다가 새끼도 아니고 다 큰 개를 누가 입양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 애는 건강상태도 안 좋아 보여서 해외 입양도 희망이 없죠..."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했다는 여자의 대답에 모두 말없이 눈물을 훔치거나 훌쩍거렸다.

슬프다. 불쌍한, 순하디 순한 그 백구를 살리기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각자 집에 두세 마리의 소형 반려견들이 있어서 선뜻 나서서 임시보호를 자청할 수도 없다. 그래도 며칠간이라도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흩어졌다.

그러나 알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공동개육아 같은 것은 나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집에 들어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입주민 톡방에 누군가 올린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밥 치웠으면 합니다. 그 밥 때문에 개가 계속 들어오다가 애들이라도 물리면 큰일입니다."

"개 보이면 바로 구급대 연락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떠돌이 개는 무조건 위험하다는 편견에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감정이다.

어제 분명 아이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그 백구의 사진을 누군가 올려놨었는데...

하지만 나도 낯선 큰 개를 보면 나의 반려견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경계하게 된다.

개를 좋아하는 나도 그러는데,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두려움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니 개만 보면 크기를 불문하고 다 만져보고 인사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는 개 마니아다.

개만 보면 사시나무 떨듯 떠는 내 친구는 함께 공원에서 걷다가도 주먹만 한 강아지가 10미터 전방에만 나타나도 내 뒤에 숨거나 얼음이 되곤 했다. 괜찮다고, 오히려 그런 긴장된 태도가 개들의 시선을 더 끌고 개들에게도 긴장감을 줄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그냥 지나가라고 수 백번 알려주고, 순한 애들 옆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래도 힘들어할 때는 개를 피해서 멀리 돌아서 가기도 했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하기에  떠돌이 개를 한시라도 급히 보호소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도 안다.

그러나 해맑은 표정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들던 백구의 모습과 케이지에 갇혀서 겁에 질린 표정, 다음날 보호소에서 올린 공고사진 한 장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국민소득으로는 진작에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 선 한국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하루빨리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나 개를 키우지 못하도록 의무교육과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키울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물건처럼 개를 사고파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돈을 주고 산 장난감이 싫증 나서 버리듯 버려지는 생명들이 너무 많다. 새로 태어난 강아지나 보호소의 개들을 입양절차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서 키울 수 있게 제도화한다면 쉽게 사서 거리낌 없이 버려지거나 보호시설이 부족하여 안락사되는 안타까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배설물을 치우지 않거나 목줄을 매지 않은 경우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산책을 시키지 않거나 묶어놓고 키우는 것도 동물학대로 간주하고 키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단속할 담당 직원의 수를 대폭 증원하고 바쁜 견주들을 대신해서 강아지들의 산책을 도와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펫시터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은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돈을 쓰면서까지 개를 산책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산책을 시킬 수 없다면 개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하루종일 빈집에서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거나 평생 동안 묶여서 사는  개들이  많다.



반려견뿐만 아니라 떠돌이 개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동물보호소에서 올린 유기견 공고 사진 속 백구의 모습. 전날 아이들과 뛰어놀던 행복한 표정을 다시 지을 날이 오기를... 공고번호:광주-광산-2023-00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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