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불이 하나둘 켜진다.
거리는 낮에 내린 비로 젖어있다.
사람들은 하루 일과의 보상을 찾듯 거리를 누빈다. 일과의 피로가 어디 있냐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나는 길 한 옆에 전기자전거를 세워 두고 기대선 채 스마트폰을 내려다본다.
라이더 전용 배달앱을 열어 주문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잡념을 동반한다.
이내 알림이 울리고 내 의식은 페달을 향한다.
회사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출근하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고
6개월은 갈 거라는 소식에 갑갑해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큰맘 먹고 전기자전거를 구매했다. 일 없는 날은 어김없이 나간다.
레미콘 특성상 다음날 일정을 전날 5시쯤 통보받는다. 일이 없다 해도 오전까지는 집에서 대기하는 일이 잦다. 갑자기 생기는 일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내일의 계획을 세우거나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배달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으로 하는 분들보다는 적게 벌지만 아르바이트 앱에 올라오는 웬만한 시급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집에 있을 때면 가장이란 이름의 송곳이 등을 찔러왔다. 가족의 얼굴은 주체 없는 협박과 같았다.
아내의 의미 없는 한숨에도 가슴이 쪼그렸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고생했어'라며
나를 반겨주던 아내의 모습이 그리 감사한 일이었다.
요 며칠은 다시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푼 돈이라도 벌 수 있음에 감사한다.
전기자전거 만세.
감사함에도 못돼 먹은 자존심은 열심히 일한다.
땀 흘리며 배달했지만 평가에 엄지모양이 거꾸로 달리면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 사이를 지날 때면 괜스레 시선을 떨군다.
조금은 이 상황을 받아들인 나의 다른 부분은
성실함으로 보답한다. 간혹 직접 음식을 받으러 나오는 고객에겐 감사하다고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전한다.
뿌듯함이 오기도 한다. 수동적 형태의 일이지만 나의 작은 수고가 허기진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니까.
얼마 전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봤다.
일본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를 주제로 한 영화인데
주인공은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의 감사함을 깨닫게 한다.
영화 초반, 공중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다. 금방 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부르며 남자에게서 빼앗듯 아이를 떼어낸다. 엄마는 남자가 잡았던 아이의 손을 기겁하며 닦아낸다. 두 모자가 돌아간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손을 흔들고 그는 미소 짓고 마주 손을 흔든다.
그 마지막 미소는 엄마의 태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그저 맑다. 나도 이런 하드웨어적인 성숙함을 갖고 싶었다. 언제든 지우고 설치하는 소프트웨어 같은 나와 대조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삶의 쓴 맛을 봐야 저렇듯 잘 익은 열매를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의 가치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정하는 거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보니 그 말이 그저 멋들어진 문장에 불과한가 싶기도 하고 그저 영화나 소설 속 이상에 불과하나 싶기도 한데 아직은 그 말을 믿는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고
나는 오늘도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