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집에 대한 단상-내 영혼에 흠집을 낸 자취방-비봉산의 메아리들 5
"S야"
"엉"
"저기 니 방에서 보이는 저 5층 건물 말이지."
"엉. 왜?"
"저기 5층에 밤마다 날뛰고 다니는 그놈이 산대."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가 더 멀리 도망치듯이 그 자취방을 떠나 왔는데 그놈이 저기 산다니. 창문이 내 방으로 나 있는 그곳을 나는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게 정말 일까?'
'사실일까?'
나는 다시 며칠을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그놈의 집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이곳을 떠나야겠어.
무슨 연유로 내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급기야 나의 모든 감각마저 물어 뜯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저 5층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인지도 궁금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귀에 들어왔다. 나는 경찰서를 찾아가 조사를 해달라고 할까 생각했었다. 무섭고 떨려서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설사 잡는다고 해도 그 새벽에 으스름한 기운 속에 그 목소리를, 그놈의 표정과 몸짓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발걸음을 옮겨 소극적인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버스가 끊기기 전 그놈의 가족이 운영한다는 시내의 분식집을 찾았다. 소문대로 분식집 간판은 그대로였고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음식을 팔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공포를 안고 구석에 앉아서 순대를 시켰다. 혹여 작은 정보라도 캐낼 수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서.
*바로 그때.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표가 날듯 안 날듯 왼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고 있는 것이 장애를 가진 듯했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 대강의 나이만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K는 갑자기 눈에 핏발이 섰다. 구석진 자리에 앉자마자 끌려 올려진 바지 밑단에 심하게 긁힌 상처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주방으로 들어간 남자는 귀퉁이에 앉아서 남은 김밥재료들을 마구 입에 쑤셔 넣는다. 마치 며칠을 굶기라도 한 듯이. 이유 없이 돌아보기도 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눌러쓴 모자를 더 힘껏 얼굴로 잡아당긴다.
그의 어머니도 마지막으로 한잔 걸치는 손님으로 바쁜 시간인데 주방 안을 쳐다보면서 불안한 모습이다. 누군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들 사이에서 감시도 당하고 개인 정보까지 자연스레 공유당하기도 한다.
K는 매일 분식집에 앉아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이다. 경찰서에 신고가 된 지 1달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이후 P내과에서 있었던 일을 경찰서에 알린 지도 스물아홉의 날이 지났다.
이미 그 비봉산 일대에 그놈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자취생들은 이사를 다닌다. 소녀들은 무서워서 신고하기도 꺼리고 막상 경찰서에 사건이 접수된다고 할지라도 직접 가서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거나 여러 사람들에 의해 까발려지는니 숨고 마는 것이다.
K는 그 트라우마로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함께 자취하던 언니가 다니는 여고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 분식집의 단골이 되어 앉아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던 날 밤 담벼락을 넘어서 들어온 그놈은 시멘트벽돌로 만든 담벼락 위 나선 모양 철조망 사이의 V자 쇠못에 여러 군데를 아주 심하게 찔린 상태로 들어왔었다. 이불 위에 묻어 있던 빨갛다 못해 쇠못에서 나온 쇳독 같은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며칠 뒤 K는 심한 몸살과 감기로 인해 P내과를 찾았다. 좁은 의원 대기 의자에서 한 남자를 보았다. 먼저 이름이 불려 나간 그 남자의 다리밑 발목부위로 심하게 불규칙적으로 긁히고 부어오른 상처를 우연히 보고 말았다. 순서를 기다리던 K는 순간 얼어 버렸다.
"파상풍 주사 맞으실 분 이 쪽으로 오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확성기에 대고 말하듯 K에겐 들렸다. 그 남자를 부르는 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뒤 K는 경찰서에 바로 갔다. 이미 경찰서에서는 어느 정도의 정보를 들고 있었으나 며칠사이 어디에 숨은 것인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K는 조용히 일어나 분식집 사이 골목에 끼여있던 공중전화로 갔다.
"여보세요...... 지금...로 좀 출동해 주세요…
…… ……“
한없이 떨렸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경찰이 출동하였다. P내과 초진진료기록지와 파상풍 주사 맞은 경위, 이후 비봉산 주위 성폭행사건들의 몽타주 외 여러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짧은 기간 동안 발정 난 망아지처럼 얼마나 좁은 구역 안에서 많은 사건이 터졌는지...
분식집 주위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어리둥절하는 사이 피맛나는 순대를 쓸고 있던 어머니는 주저앉았다.
그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왼쪽 다리를 더 심하게 절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순순히 경찰의 말에 반응도 못한 채 지친 듯 멍한 눈으로 손목을 내밀었다. 출동한 2명의 경찰관은 수갑을 채우며,
"당신은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K는 다시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걸어 나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표가 안 나게 저지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그동안 내재되어 왔던 힘으로 그 남자의 가운데 턱에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픽션(K양을 통해 아주 소극적인 복수를 한 셈입니다. 실제 그놈의 행방은 묘연했으며 졸업할 동안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덧붙임글)
비가 계속 와서 그런지 조금 다운 모드입니다. 이 글은 미리 써놓고 단어하나마다 손을 너무 봐서 글이 흐트러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안 쓰던 픽션에 필을 받아서 소설같이 쓰다 보니 문맥 간의 필연성 때문에 오늘 우산 쓰고 공원산책하면서까지 고쳤습니다. 그래도 완성도도 높지 않은데. 복수로 수백 번 고민한 것이 겨우 턱 어퍼컷이라니… 수십 번 읽고 고치다가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시 했어요.^^ 점점 글쓰기에 미쳐 가는 듯합니다. 즐거울려고 나아지려고 시작한 일이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일만 기대하고 또 고대합니다.^^
3일을 쉬고 내일 출근하려니 부담이네요. 직장이 조용한 상태도 아니고 중간관리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어깨에 모래주머니 여러 개 올린 듯합니다.
비도 맞아가며 공원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슬리퍼 벗고 맨발로 첨벙첨벙 20여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중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게.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나 정도
진심으로 이런 글들이 뭐라고 라이킷 누르시고 조용히 읽어 주시고 구독해 주시고 어떻게 고마운 맘을 전해 드릴까요. 더 좋은 글을 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독자님 모두 행복해지시면 좋겠고 웃을 일이 6월엔 더욱 가득하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다음 편은 J시 J남고주위 자취방으로 옮겨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