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거리면서 서걱서걱 살갗이 썰어지는 느낌이랄까."

집에 대한 단상 제2편-B시로 이사와서 독을 품고 살다 [단칸방시리즈들]

by 윤슬






아저씨가 나를 데려간 곳은 아주 먼 친척이 운영하던 병원이었다.

[용] 자 돌림인 걸로 봐서 아버지 쪽 친척인 거 같았다.


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다.

기억은 없지만 금식이 된 상태였나 보다.

입에서는 반투명 연둣빛 신물이 올라왔던 거 같다.


맹장염이었다.


수술대에 누워 하반신 마취만 된 상태이다 보니 모든 소리가 다 들렸다.


"쟤 자는 건가."


집도의인 원장이 말했다.

나는 하반신 마취로 맹장수술 부위가 여성 생식기와 인접한 관계로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거였다. 하체가 발가 벗겨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안 자요."


조그맣게 내뱉은 뒤 다시 자는 것처럼 꿈쩍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젠 집도의인 원장이 메스를 오른쪽 맹장이 있는 부위에 갖다 댔다.

통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쓰윽 샤샤샤샤...

어떻게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도 안 아픈데 칼끝이 차갑게 느껴지면서도,
간질거리면서 아무튼 서걱서걱 살갗이 썰어지는 느낌이랄까.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수술이 끝났다.

원장은 내게 말했다.


"이것 좀 볼래?"


터질 듯이 꽉 찬 푸르스름한 물방울 모양의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을 거야. 천만다행이야.

마침 그 아저씨에게 발견이 되어서 네가 운이 좋네.

고생했어."


나는 소변줄을 꽂고서 병실로 올라갔다.





이 단칸방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수술을 한 것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수없이 다짐했던

말이 이것이다.


'나는 반드시 내 이름을 된 집을 가질 것이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서. 정말 지긋지긋해.

매달 돌아오는 달세 계산해서 주는 거며 주인집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야 하는 것 그만하고 싶다.

제발...'


그러나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아직 나는 제대로 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기술도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불타오르는 집념만 가지고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시장의 경비원으로 벌어오는 돈으로는

생활비와 달세를 주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시간들이었다.


주위에서는 1977년 7월 마지막날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받은 400만 원이 넘는 보상금을 어디다 탕진하고

저렇게 사냐고 수군거렸지만 나는 알바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 형제들도 6명이나 더 있었지만 시골에서

치매에 걸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 할머니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이유는 아버지가 큰아들로서 물려받은 시골집과 논 두어 마지기도 혼자서 물려받아 저축한 돈은 10원도 없었기 때문에. 아들형제 2명 중 한 명은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살 집을 일궜고 한 명은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나 말발로 새마을금고 이사직함을 가지고서 당시 럭키회사에 다니면서 열심히 한 푼도 안 쓰고 돈을 모아 버젓이 B시에 나무가 있고 좁았으나 마당이 둘러쳐진 집을 소유했다.


딸형제들은 서울로 진주로 경기도로 시집을 가 할머니를 닮아 억세게 가계를 일구며 결혼해 살고 있었다.

출가외인인 딸들조차 당신들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사랑스러운 할머니에겐 관심조차 없었다.


작은 아버지나 고모들은 우리만 보면 아버지 욕을 해대며 너희 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고 하셨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보상금 사백만 원과 아버지 험담은 계속되었다.


시골에서의 할머니 소식은 죽마고우 친구들과 동네사람들로 부터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작정한 듯이 시골에서 할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다.


'아버지 준비라도 하고 가셔야죠. 대체 이 달동네 단칸방에 할머니를 모셔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나의 마음속 외침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작은 아이가 된 할머니 손을 잡고 B시로 상경했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임글)

지난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는 일은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기억이 안 날 듯 하지만 쓰다 보면 엊그제 일같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도 신기합니다.


저녁도 포만감을 느끼게 먹고^^ 서른한 개 정도맛의 아이스크림도 먹을 만큼 먹고^^

비가 오더니 습기가 너무 차서 선풍기를 돌려도 불쾌지수가 상당히 올라가는

저녁시간입니다.


다들 장마철 습기와의 전쟁 잘 치르고 계신가요.

더운 가운데서도 건강 잘 지키면서 지내시길 바랄게요.

부족하고 사소한 글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음 편 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