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보고도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남자라면..."

집에 대한 단상 제3편-B시로 이사와서 독을 품고 살다 [단칸방시리즈들]

by 윤슬





아버지는 부리나케 방을 보러 다녔다.

적어도 할머니와 같이 있으려면 잠시라도 쉴 방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방을 두 개 구할 능력은 택도 없는 것.


그 달동네 방에서 약간만 오른쪽으로 내려온 곳에 방이 났다.

그곳은 주인집 대문을 열자마자 가파른 계단 서너 개가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서면 전망이 나름 괜찮은 주인댁이 버티고 있고,
주인집 왼쪽 편에 문이 따로 달린 단칸방엔 새댁이 세 들어 살았다.


오른쪽 끝은 양변기가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다시 화장실을 기점으로 돌면 셋방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게 된 곳은 주인집 현관 반대편 그러니까 뒷꼼장 같은 곳으로
주인집 현관에서 ㄷ자로 한참 돌아 쭉 들어가서.

젤 안쪽에 있던 그야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만한 구석진 곳에 있는 방이었다.


나름 이전보다는 한참이나 업그레이드된 다락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나는 다락이 달린 이 집을 무척 좋아했다. 밑에 방엔 할머니를 모셔도,

밤에나 쉴 때는 대여섯 정도 되는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내 세상이 열렸기 때문.

나의 공간에 대한 집착은 예전부터 강해서 비록 일어설 수도 없었지만 이곳에서

[윤상의 라디오]를 들으며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핸드폰으로 통화할 때 내가 있던 곳을 비출 수 있는 영상기술이 텔레비전 기사로 오르내렸는데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면 내가 있는 뒷 배경이 너무 더럽고 초라해서 들키면 어떻게 할까'라고 걱정을 했으며 그런 기술이 영원히 개발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기가 된 할머니가 입성하셨다.


우리에게 [빌어먹을 년]이라고 하루도 안 빠지고 호령하며 욕을 해대던 할머니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온 동네를 뒤져서 찾아내곤 하던 할머니가,

우리에게 김치를 가마솥 위에 데워서라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침을 들고 나르던 할머니가,

늘 은색 비녀로 머리를 땋아 곱게 단장하던 몸빼바지에 황색 저고리를 입고 계시던 할머니가.


걸어서 들어온 할머니는 마지막엔 방에 갇혀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할머니가 요강에 소변을 본 뒤 텔레비전 튀어나온 뒷부분에 부어서 불이 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당시 Y시장 골목 전자제품 상가에 가서 새로 텔레비전을 구입했다.

당시 삼풍백화점 사고가 나서 걸린 모든 제품에서 사고 수습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과 젊은 남자 한 명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배달을 위해 젊은 직원이 우리 집에 오기로 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아무도 온 사람이 없는데 온 방에 똥오줌 냄새가 나는 곳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러 또래의

남자가 온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혼자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내가 사는 이곳을 보고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남자라면 내가 사귀어도 될 사람일 거야.'


혼자서 김칫국을 마시며 참으로 웃긴 생각을 다 하였다.

드디어 텔레비전 설치하는 날이 다가왔고 그가 덩치가 큰 텔레비전을 가지고 왔다.

오기 전 나름 냄새가 최대한 안 나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다.

이차 여차 다 설치를 하고 말끔히 쓰레기까지 챙긴 후.

다음에 혹시 문제가 생길 시 여기로 연락하라면서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정신없이 새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할머니의 치매 상태가 위중하였으므로 배웅도 할 수 없을뿐더러 자꾸 밥을 안 챙겨 주고 나 혼자 다 쳐먹는다고 욕을 해대며, 밥을 주고 나면 다시 밥을 챙겨달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그에게 받은 명함도 잠시 잊고 있었다.


다락방 가파른 계단에 잠시 올려둔 명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앞면을 무심코 뒤집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