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야, G야, 밥 먹고 학교 갔나.”(마지막 유언.)

집에 대한 단상 제4편-B시로 이사와서 독을 품고 살다 [단칸방시리즈들]

by 윤슬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의 명함.

뒤집어 보니.


[이기우를 찾으세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설레는 이야기이긴 한데, 정말 제가 이기우씨를 찾았으면 저랑 사귀어 주셨을까요?

혼자 상상하면서 피식 웃어 봅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추억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허둘이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이 다락방에서 할머니를 모시면서 살던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똑똑하다는 소릴 듣던 학생이 멍텅구리가 되어서 하루 종일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시골에서부터 할머니의 치매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도시의 단칸방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제대로 화장실에 갈 다리의 힘도 다 빠지시고, 앉아서 온 방바닥을 쓸고 다니시면서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아비는 아직 안 들어왔나."


"S, G 밥 먹고 학교 갔나?"


"니는 누고?"


"왠 새파란 젊은 년(나를 두고 한말)이 남의 집에 와 있노?"


늘 굶긴다고 욕하는 이야기는 보너스다.

급기야 다 아는 결말처럼 방바닥 장판도 다 뜯으셨다.

요강을 들고 하체를 밀고 다니면서 구석진 곳에 붓기도 하고.


아주 가끔씩 큰 고모가 근처에 사셨는데 한 번씩 엄마를 보러 왔다.

큰 고모는 할머니 모시는 거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고모도 첫째이다 보니

나이도 많으셨고, 왔다 가면 이 잡듯이 잔소리를 하셨다.


단칸방에 바로 붙어서 조그만 간이 부엌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나오면 오른쪽에는 다시 샤워를 하거나

할머니 옷가지를 손빨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수돗물이 얼어서 터지고 할머니의 대소변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니 빨아야 할 빨래는 점점 늘어났다. 하루는 빨간 대야 같은 곳에 할머니 옷가지를 씻지도 못하고 담가두고 있었다.


고모는 기어이 그곳에 들어가서 빨간 대야를 다 휘저으며 내가 게으르다고 아주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셨다.

속으로,


'아무리 우리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다 탕진했기로서니...(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고모는 저 밑에 평지에 자기 집도 가지고 계시고 세주는 1층의 두 칸짜리 방도 2층 독채도 세를 주어 돈을 버시면서 할머니는 얼마나 사실 지 모르는데 잠시라도 모셔주면 안 되나요? 뒷수발은 우리가 할 테니...'


할머니는 가끔 큰 창문틈을 잡고 몸을 일으키시어 딱딱해져서 말라버린 똥을 다 빠진 이로 깨물어 보시기도 하고 [누가 여기다 똥을 싸는 년이 있냐]면서 창문 틈 사이로 말라서 딱딱해진 똥을 던지셨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비탈길에 노부부가 구멍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누가 여기다 똥을 버리는 년이 있냐"는 등의 비슷한 소리를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내가 쓴 글 제1편에 보면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구멍가게 주인 할머니의 고래고래 호령소리에 비 오는 날 검정 우산을 쓰고서 검은 봉지에 할머니의 배설물을 담아 오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에겐 엄마보다 소중한 분이시니깐. 그때는 정말 꽃향기가 날리는 20대 초반이었기에 데이트도 할 수 없고 할 생각도 없는. 정말 우울하고 슬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자존감은 있는 대로 떨어져서 누가 내 종아리에 근육이 많은 걸 보고 [무다리 같다.]고 하여

할머니 밥도 안 챙겨드리고 다락방에서 울어댔다.




그런 고모도 쓸 데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다시 시장 경비일을 하시니 야간에 안 들어오시는 날도 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아주머니도 계셔서 집을 비웠다. 교회 학생들을 모아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원에 다시 나가서 대학에 들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랬다. 나에게 욕을 하셔도 피붙이고 악을 쓰면서 공부를 한다고 하니 잠시 할머니 끼니도 챙겨주시고 왔다 갔다 하셨다. 아르바이트 비로는 학원비가 어림도 없어 아버지와 그 아주머니도 학원비를 보태어 주셨다.


그리고 기를 쓰고 공부한 덕에 대학에 붙었다.



-다음 편에 계속-



(윤슬작가의 변)


대학에 붙고 2학년 1학기 4월 24일 무렵 B시 HD병원 지하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할머니의 욕창이 심해지고 갑자기 어느 날 할머니 턱이 빠졌습니다. 전에도 빠진 적이 있었으나 다시 올려도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HD병원 중환자실에 모셔가게 되었고. 면회를 가보니 할머니의 양손이 침대에 묶어져 가뜩이나 얇은 노인의 피부가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나아가는 곳은 시퍼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뒤로 한채 동생과 저는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할 육신의 몸을 보내드렸습니다.


“S야(나), G야(여동생), 밥 먹고 학교 갔나.”


오락가락하시더니 갑자기 할머니가 정신이 잠시 돌아오셨습니다.

그 말은 눈을 감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글은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평지의 단칸방에 간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