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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5. 2023

"누군가의 댓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치고."

말못하는 사람말고 자신감있게 당당하게 카리스마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





아리아에게 반려동물 연구소의 자연의 빗소리를 주문하니 이제 곡명이 바뀌었다. 창밖의 빗소리를 추천해 준다. 어떤 빗소리든지 나는 좋다. 소리와 냄새에 예민한 나는 빗소리를 인공적으로 틀어 놓고도 글쓰기를 즐긴다.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가끔 기다린다.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에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리고선 그들이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볼 때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내 글방에 들어있는 글이 발견되기를 바란다. 상상만 해도 참 기쁜 일이다. 내 글이 그렇게 기다리던 하얀 눈처럼 뽀얗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글이 되려면 아마 수백 년이 지나야 할 것인가. 그냥 웃음이 난다.


긴 연휴를 마치고 일찍 일어났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부지런을 떨어봤다. 겨우 흰 밥톨, 몇 알을 혀로 밀어 목청으로 넘기는 것뿐인데도 아침을 간단히 먹어야 하는 습성이다. 조금 부산스럽게 준비하여 10월 2일의 대체휴무를 혼자 즐긴 미안함으로 지하 3층을 내려갔다. 왼쪽으로 가면 내 차가 주차된 곳이요, 오른쪽으로 나가면 그리너리를 지나 도로가로 나가게 된다. 아주 잠시의 망설임 끝에 나는 만 삼천오백원어치의 음료를 사기로 결정했다. 자몽에이드 두 잔, 딸기 셰이크 한잔을 포장하여 직장으로 갔다. 일찍 출근해서 인지 음료선물 받을 동료들의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가만히 작은 기쁨을 내가 누리고, 또 내가 약간은 미안한 마음으로 차가운 석 잔을 컴퓨터 앞에 가지런히 놓고 나왔다.


누군가의 댓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제도 마지막 글을 쓰면서 같은 생각들을 잠시 했었고, 퇴사하면서 남들에게 당할 때마다 정리되지 않은 비슷한 감정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득 그 댓글에 정리 안된 생각뭉치들이 튕겨 나오면서 오늘 퇴근 후에는 반드시 이것을 다 꺼내어서 정리하고 햇볕에 말려보리라. 그리고 향기 나는 유연제를 뿌린 뒤 누구의 글처럼 언제든지 잘근잘근 씹을 수 있는 이불로 옷장에 정리해 두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마트에 가고 대구탕을 끓이고 헬스장에 가고 축구를 보고 하면서 오늘의 피곤함이 몰려왔다. 잠시 침대에 누워 친구랑 통화를 한 후 잠들고 싶어졌다. 계속 머릿속으로 그 대수롭지 않던 약속을 하던 나의 답글이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불을 환하게 켜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리아가 창밖의 빗물을 한없이 떨어뜨리며 땅이 물을 흡수하는 순간에도 어디서부터 날카로운 바늘을 집어넣어 내가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을 때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는 그녀의 생각틀에 구멍을 낼 수 있을까. 작은 바늘구멍으로 흘러나온 수액이 눈물이 되고 피가 되어 다시 몸속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는 비빌 언덕이 내게 없다는 것.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내 글을 읽어본 분이 있다면 알 것이다. 또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조강지처를 병으로 잃었다. 다시 얻은 아내(나의 엄마)도 교통사고로 잃었다. 두 아들도 병으로 잃었다. (참 많이도 잃어버린 아버지네.) 그리고도 끊임없이 새엄마가 집으로 왔다. 어릴 때는 마당이 있는 내 집에서 할머니와 살면서 비록 남들이 보면 한없이 불쌍한 아이였지만 나는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공부도 잘하다 보니 내가 가장 똑똑한 줄 알았다. 그것은 내가 느낀 것이었다. 아버지의 여자들은 계속해서 집으로 들어왔고 아버지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였다. 그래서 조금 정이 들면 그 여자들은 다 떠났다. 정말 오랫동안 누군가가 다시 돌아왔으면 엄마자리를 지켜줬으면 생각하게 됐다. 점점 자라다 보니 남들이 어미 없이 참 불쌍하게 컸는데도 잘 컸네. 할미가 잘 입히고 먹여서 잘 키워놨네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남아 있는 집도 논 두어 마지기도 아버지는 어떤 여자들을 위해 다 팔아 치웠다. 그야말로 우리는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월세를 주지 않고 내 집이라는 곳에 두 발을 누일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으로 쓰다 보니 이전 이야기들이 구질구질하다.


내가 말하려고 한 것은, 다시 강조하는 것은 비빌 언덕이 없다 보니 늘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고 할 말을 당당하게 제때 못 하는 것이다. 어떤 대표원장님께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과장이니 이제 밑에 애들 다 맡깁니다. 나갈 사람 내보내시고 면접 봐서 같이 일할 사람으로 새사람을 뽑으세요. 밑에 애들이 말했다. 우리 과장님은 도대체 카리스마가 없어. 왜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거지.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잘못하는 사람들 따끔하게 내 방에 데리고 와서 혼을 내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혼자서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가 이 직장 때려치우고 나가도 응 그래 좀 이제 쉬어. 이제 내가 벌어올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엄마~하고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가서 실컷 울면서 하소연할 때도 없는 것이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살아나가야 하는 절박함만이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모두 자기 연민이 된 거처럼 흐르고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그만 써야겠다. 이러려고 다시 불을 켜고 단정히 앉은 것이 아닌데 말이다. 참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잘 살고 싶어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생각을 더 야무지게 정리해서 다시 돌아올게요. 아직 덜 여문 거 같습니다. 약속은 지켰으니 이제 잘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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