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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7. 2023

"아침이 되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다는 것을."

직장동료의 권고사직을 지켜보며 보낸 위로의 시간들.





밤 11시 40분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걸어오고서도 또 헤어지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를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불과 1년 전의 일인데도 나는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기도 하고 또 다른 그녀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오후 5시 무렵 직장 동료가 다급히 내 방에 들어왔다. 타 부서의 R과장님이 내일자로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정말이냐고 물었다. 당장 연락해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 R과장님은 여러 가지 협상 과정이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더러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했다. 직장 근처에서 조금 돌아 나와 남의 아파트 앞 상가 근처 닭구이 집에 들어갔다. 마치 직장의 누구라도 우리들의 만남을 볼세라 우리는 그렇게 먼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또 다른 그녀가 오기 전 위에서 눈물을 글썽인 그녀와 마주 앉았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내막을 아는 동료가 그간의 못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다. 1년 전쯤의 나의 이야기 같다. 그때는 내가 권고사직 당해 그만둘 때도 아무도 밥을 먹자는 얘기도 하지 않았으며 함께 있어 주지도 않았다. 내일 사직하는 그녀가 오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앞에 앉은 직장동료로부터 R과장님의 사연을 듣고 있음에도 문득문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R과장님이 길을 헤매다 전화가 왔다.(타 도시 분이다.)그녀가 오기 직전 우리는 닭목살 2인분과 닭갈비 1인분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맥주를 1병 시켰다. 오늘 우리는 대리 운전이라도 할 기세였다.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생각보다 씩씩했다. 해고수당으로 1년이 안되었지만 퇴직금을 주기로 했다고. 실업급여 신청도 해주었다고. 갑자기 오너가 내일 저녁 6시에 전시회가 있으니 같이 가자는 얘기로 마무리가 되었고. 협상은 R과장님이 원하는 대로 되었으며 악어의 눈물을 주고받고, 미사여구가 잔뜩 섞인 말들로 대화가 끝났다고 했다. 생각보다 훌륭하고 씩씩한 R과장님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조만간 오너와 비행기 안에서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함께 있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개원멤버들이 맥가이버와 독일병정이라고 불리며 아무리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먹히지 않을 테니 몸을 사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가스라이팅과 안하무인을 섞어 버무린 요리로 잠깐 대화를 나누되 개원멤버에 대한 험담은 절대 하지 말 것. 앞으로 오너와 독대시 모든 서류와 사건 위주로 문서를 제시할 것. 내일 나가면서 문서형식을 주고 갈 테니 직장에서 생기는 일에 대처 잘하라고 또다시 신신당부를 하셨다. 싸워서 이길 비장의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가지 허술하게 나가면 그 오너 앞에서는 벌거숭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사여구의 여신이니 속지 말고, 말솜씨가 엄청 훌륭하니 계속되는 집요한 질문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은 말씀드릴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하겠습니다."로 마무리 치거나 이동시 계속 직장동료나 직장 분위기에 대해 심하게 다그치며 알아내려고 하면 눈을 살짝 감고 "제가 멀미가 좀 있어서 눈을 조금 감고 가겠습니다."등등으로 상냥하게 받아치며 웃으라고 말하였다.

(R과장님과 함께한 만찬, 닭목살 2인분과 닭갈비 1인분.)

고기는 부드럽고 잡내가 없었으며 며칠 전 먹은 닭갈비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맥주는 1병으로 3명이 나누어 마셨다. R과장님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 소리 없이 표정을 읽어 주고 들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혹시 눈물을 보일까 봐, 아니면 우리가 눈물이라도 날까 봐 염려했으나 3명이 앉은자리에서는 아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R과장님이 점 본 이야기를 했다. "자네는 점괘가 안 나와. 그냥 가."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제발 결혼은 하는지 봐주세요." 하니 "자네는 진돗개상이니 반드시 결혼하게 될 거야. 진돗개는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어. 그러니 늦게 결혼해." 했다고. "아니 언제 시집가게 되냐고요. 시집은 가냐고요?" 우리는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괘얘기를 주고받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가 입을 열면 우리 둘은 듣고만 있었다. 서둘러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난 뒤 우리는 바로 옆 카페로 옮겼다.


들어가자마자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R과장님은 나를 보호해 주자면서 혹시라도 직장의 다른 사람들이 우리 둘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면 자기(나)가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니 구석진 곳에 돌아 앉으라 했다. 또다시 언니의 음성으로 나에 대한 충고가 시작되었다. 자기가 이 상황들을 잘 타계할 수많은 방법들이 있으나... 차마 야비하게 하는 방법은 말해주기 싫은데... 그 J를 정신 들게 하기 위해서는 오는 환자 중에 지인 3명만 섭외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3명에게 직장카페에 J에 대한 컴플레인 3건만 올리라고... 나참... 마치 직장의 신이나 [손자병법]과 [삼국지] 마스터처럼 지금 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전술?을 내게 말해주셨다... 우리 셋은 음료와 마늘바게트빵으로 수다를 나눠 먹었다. "자기는 우리처럼 나이 들지 않고 아직은 젊으니 처세를 잘해서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 해. 무리하게 하지 말고 내가 이미 불씨를 붙이고 나가니 알아서 현명하게 하도록 해..." 여러 가지 진심 어린 조언에 코끝이 시큰해 왔다. 그러나 아무도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계산대옆에 여러 가지 문양의 손수건이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이미 내 것도 골라 놓고 있었다. 이별의 선물이라며 큰 언니 같은 R과장님은 내게는 체리문양의 손수건을 다른 동료에겐 짙고 푸른 큰 장미가 그려진 손수건을 선물했다. 밤 11시가 넘으니 쌀쌀해져 우리는 손수건을 스카프로 만들어 목에 둘렀다. 참 예쁘고 따뜻했다.

(R과장님이 내게 선물해 준 체리모양의 손수건. 목에 스카프로 두르니 어울린다며 이뻐해 주셨다.)




한참을 걸어서 주차장으로 왔다. R과장님이 제일 먼저 주차장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동료인 그녀가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신 분인데...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파. 이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아... 정말 뒷모습을 보니 너무 아프다... 저 나이에 앞으로 10년을 더 일하려고 하신 분이야. 다 사정을 말하지 않았지만 생계를 책임질 가족들이 여러 명 있는 것 같았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안다.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잘 느끼지 못한다. 내일 이후 출근을 하지 않는 아침이 되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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