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집에 대한 단상-나의 영혼이 서려있는 마당 있는 집 1092번지
안방
그기에는 선반이 있었네.
뭐든지 숨길 수 있었다네.
술을 만드는 누룩이 숨어 들어오고
홍시 찾으러 올라가던 그곳.
오래된 경첩 달린 네모 문 장롱
그 안에 내 골덴바지 숨을 쉬고
내 기도로 청바지 되어 나올려나
몇 날 며칠 숨참고 기다렸네.
생쥐들의 안방에 사람이 숨어들어
누가 주인인지 구분 안되던 그 밤들.
딱따구리 울어대고 토요명화 펼쳐지니
배고픈 그 밤에 먹어대던 설탕 한 컵.
똥 뺀 배가른 멸치 서너 마리.
서러움 굽이굽이 이불자락에 담아 올려
꿈속에서 다시 만날 오라버니.
엄마얼굴 기억나지 않는 그 밤.
그리움은 끝없이 밀려들더니
마침내
참은 숨 토해내니
가만히 가만히 덮어주던 너는
소리 없던 새벽 눈송이로구나.
또 다른 새엄마가 왔다.
아버지는 B시에서 아파트 관리실에 살면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새엄마는 다 큰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아버지는 회색빛 철로 만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B시 A동 주공 아파트 청소를 하고 계셨다.
“조금만 기다리라. 아버지가 여기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면 너네들 데리고 여기 와서 편하게 살게 해주 끼다”
나는 진짜 아버지가 관리 소장이 될 날을
방학 때면 B시에 와보면서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은 동생이 아버지가 계시는 B시에 와서 설사를 너무 해서 미끄럼틀 옆에 서있는데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의 탈진 상태였다.(이 기억은 연결이 안 되며 날아다닌다.
무슨 연유인지. 동생을 만나봐야 퍼즐이 맞춰질 테다.)
관리 사무소가 있는 2층 동은 당시 쌀집이 있었다.
내 또래가 있어서 같이 논 기억이 있다.
어딘가에서 날 기억할까. 영원히 찾을 수도 없는 그녀.
가끔 이유도 없이 떠오른다. 또래의 해맑던 그녀가.
이번엔 안방에 있던 장롱 얘기다.
청바지가 너무 입고 싶었다.
“하나님 이번 설날에는 새엄마가 청바지 사 오게 도와주세요.”
며칠이고 기도를 했다.
드디어 설날이 되었다.
새엄마는 청바지대신 고동색 골덴 바지를 사 오셨다.
정말 너무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내가 청바지 입고 싶은 소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 구하는 것은 뭐든지 주신다고 하셨지요?
저 정말로 너무 청바지가 입고 싶어요.'
나는 옷장 속에 고동색 골덴바지를 청바지로 바꿔 달라는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정말로 기도하면 옷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저는 정말로 청바지가 입고 싶었어요”
“내가 청바지를 사려고 하다가 저 골덴 바지를 샀는데……“
당시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내 기도가 부족했구나.
조금만 더 일찍, 미리, 더 많이, 기도했으면
"반닫이 장롱 속에 저 바지가 청바지로 바뀌었을 텐데......"
라고 오래도록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