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부락 1092번지여"

제 8화 집에 대한 단상-나의 영혼이 서려있는 마당 있는 집 1092번지

by 윤슬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를 꽃으로 피우면서 정작 당신은 아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가 J시로 진학을 하고 나니 혼자 덩그러니 안방에 앉아 방구들을 뜯어 내는


새까만 손이 되고.


꽃창포 잎을 뜯어 나물 무쳐 먹는다고 초록색 물이 들고.


온 방 구들을 뜯어내고 그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 작은 등이.


동생과 나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푸른 멍을 새겼다.




마당아래 북쪽으로는 땔감을 넣는 곳과 통시가 포함된 헛간이 있었다.


통시는 바닥을 파서 큰 장독을 파묻는 형태였다.


똥이 많이 차면 통시 바로 옆에 재를 거름에 쓰기 위해 헛간에 모아 놓았었다.


어떤 때는 리어카를 들고 와서 똥장군에 똥을 퍼담고.


또는 거름을 만들기 위해 똥을 퍼서 모아둔 재 가운데를 판 다음 똥오줌을 퍼다 부었다.


당시 똥퍼는 바가지는 군인이 쓰던 국방색 모자를 굵은 막대기 끝에 매단 것이다.


똥을 퍼올리면 무겁기도 하고 균형을 잘 맞춰서 잡아야 정확히 재 가운데 부을 수 있었다.


가끔은 할머니가 밭에 거름 주고 오라 하여 리어카에 싣고 작은 밭에 가서 뿌리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면 갈비(솔잎 뭉친 땔감종류)를 모아 놓거나 짚을 둔 곳에 물이 찼다.


그러면 큰 대나무 막대기로 우리는 맨 발로 막힌 구멍에 쓰레기를 걷어내고


구멍에 대나무를 넣어 여러 번 휘저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 물이 빠지고 나면 마당에서 두꺼비집을 만들거나 다리모양의 흙집을 만들어서 놀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먼저 자취를 하러 J시로 떠났는데.


토요일이 되면 할머니가 보고 싶고 동생이 있는 1092번지 우리 집에 왔었다.


오기 전엔 중앙시장에 들러서 잡채를 사 오기도 했다.


"이게 뭔데 이렇게 맛있노?"


할머니는 중앙시장에서 사 온 잡채와 어묵 국물을 좋아하셨다.


잡채를 사면 어묵 국물은 공짜로 주었는데, 어묵을 길게 채를 썰어 넣어 주셨었다.


동생과 나도 할머니랑 앉아 그 긴 어묵 오라기를 입에 물고


한 손으로는 줄타기를 하듯 입으로 땡겨 먹기도 했다.




그 통시와 헛간 위에는 돌감나무와 일반 감나무가 넓게 퍼져 드리워져 있었다.


쓰레트 지붕은 감을 따러 가끔 올라가면 찌직 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그 지붕도 가끔 제격인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구마 빼떼기 말리는 일과


곶감 만드는 광주리를 이고 있는 일이었다.


남향이라 햇빛이 오래 머무는 곳이라 우리는 오랫동안 익어가는 곶감과


말라비틀어져서 단맛이 더욱 강해지는 고구마 빼떼기를 바라보았다.


그 밑으로는 이웃집과 경계하는 돌담이 있었다.


이 벽은 자주 무너지고 해서 할머니가 자주 돌과 진흙을 동그랗게 이겨서


돌담을 만들어 갔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1092번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머물다 간 곳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황진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안방과 작은방 그리고 대청마루.


그 부엌, 나의 모든 놀이가 머문 조롱박 닮은 마당.


나지막이 한번 더 불러본다.


그래서 더 서러움이 가득한 나의 집 1092번지.


필동 부락. 금곡리. 지수면. 진양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