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창호지 문에 손가락 크기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제3화 집에 대한 단상-내 영혼에 흠집을 낸 자취방-비봉산의 메아리들3

by 윤슬





비봉산에 따라 올라 간 일이 있고 난 뒤 내 영혼에는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무 대문은 삐걱거렸고 겨우 못질을 해서 고정하는 것이 다였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기억하지 않는 듯 대했고 오히려 그것이 고마웠는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빨갛게 달아오른 30와트백열등 필라멘트가 뚝 끊어지듯 마치 그 일이 남에게 일어난 일인마냥 가끔 내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물끄러미 내 몸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이 중정모양을 가진 듯한 자취방에서 살기 힘들 것 같아요.'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되도록 멀리 떠나고 싶었다. 다시는 이 골목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오는 듯했고, 그날 미수에 그친 그 일을 마무리하려는 듯 더 큰 칼자루를 들고 오는 그놈에게 더 큰 수건을 들고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공포스러웠다. 밤에는 악몽을 꾸며 하릴없이 팔을 휘저으며 땀에 젖어 깨곤 했다. 그러나 그런 새벽에도 사찰을 끼고돌던 그 담벼락 아래에서 들리던 고운 새소리와 때론 또렷이 들려오는 맑은 목탁소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 좁은 골목의 제일 끝집. 그분마저 살 희망을 잃고 있던 MS할머니집을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YI와 함께 방을 보러 다녔다. 되도록 멀리 내려가자. 비봉산을 떠나자.

그렇게 해서 구한 집은 여고와 여전히 가까운 주인 부부가 사는 자취생을 위해 지어진 방마다 부엌이 딸린

업그레이드된 집이었다.




언니가 J시에 살기에 가끔 내려간다. 내려가면 언니는 먹을 것을 잔뜩 해놓고 나를 기다린다.

배추김치 무김치 파김치 멸치볶음 일미볶음 건새우볶음 우엉볶음 연근조림 나물류도 곧잘 해준다.

언니의 가려진 손목이 보인다. 벌써 투석을 받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고도

동생 먹인다고 시장을 보고 야채를 다듬어 김치를 담그고 도시락 반찬 같은 볶음들을 해낸다.

이젠 뚫었던 혈관이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어져 여러 곳에 두꺼워지고 푸르죽죽한 흔적들을 남기고

고착되어 버린 언니의 가녀린 팔의 상흔들. 가만히 쳐다보면 시려오는 눈두덩에 나는 살며시 화장실에 들어간다.


어느 날은 언니 집을 들르기 전, 잠시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옛날의 주소명인 상봉동을 찾아갔다.

옛날의 그 아름드리 두 그루 나무는 없어진 지 오래다. 여전히 생활관은 옛 건물 그대로 서 있었고

빨간 벽돌의 모교가 역사를 말해주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사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자취할 때의 그 도로와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그 골목 끝집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직도 슈퍼가 그대로 있었고, 사찰의 예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근거리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여전히 아주 길게 그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나 있다. 걸어가던 길목 입구에 다 무너져 내릴 듯한 쓰레트 지붕을 보았다. 예전에 살던 친구들이 무너져 내린 먼지더미에서 손짓하는 듯하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윽고 막다른 길도 없는 그 골목 끝집에 다다랐다.




*벨을 눌러본다.

그곳은 이전 건물은 온 데 간데없고 3층짜리 현대식 시멘트 건물이 올려져 있다.

은색 막대기모양이 세로로 쳐진 철문이 놓여 있다.

누르는 벨 옆에서 좀 전에 통화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신가요?"


"저 밑 전봇대에 붙어 있던 종이를 보고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그 방 보러 왔습니다."


철컹.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앳된 고등학생과 함께 들어선 그녀는 옛날 생각에 마음이 울컥한다.


"아 좀 전에 전화하셨던 분이군요.

지금 남은 방은 이 쪽 방입니다."


그녀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옛 자취방이지만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떠올라 앞서

계단을 오르면서 얘기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지막이 들려왔다.

모든 것이 현대식이다. 더 이상 옆방에 불이 켜졌는지도 수돗가에 쌀 씻으러 누군가 부스스 걸어 나오는 모습도 볼 수 없다. 애써 옛 기억을 찾으려 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여기서 몇 년이나 사셨나요?"


"지금이 17년 가까이 되었는데요. 왜 그러시죠?"


"사실 저는 27년 전쯤 이 자리에서 자취했던 사람입니다.

이제 이 아이가 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젠 옛 흔적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군요...

전 주인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MS 주인할머니. 부모님 성인 LG가 붙어 네 글자여서

이름이 그 당시엔 보기 드물었고 지금까지도 정확히 기억이 난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된... 일을 다 기억하시는군요......"


젊은 여자의 알 수 없는 표정과 야무진 입매가 말끝을 흐리면서 서서히 굳어지는 것을 보며 그녀는 이전의 그 무대에서 페이드 아웃되어 서서히 사라졌다.*


*-*픽션





새로 구한 이 집은 희한하게도 모든 문이 나무 빗살에 창호지를 붙여서 만든 그런 곳이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남은 야간자율학습을 위해 저녁시간에 잠시 밥 먹으러 집으로 오니 그 창호지 문에 손가락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음 글은 뚫려있는 그 구멍속으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