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집에 대한 단상-내 영혼에 흠집을 낸 자취방-비봉산의 메아리들2
어스름한 저녁 무렵. 나무 대문이 삐걱 거리며 밀어젖혀졌다.
사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급하게 들어섰다.
"여기가 L 씨 댁인가요?"
"무슨 일이시죠?"
안채 툇마루에 앉아 있던 L 씨의 어머니는 며칠 째 초점 없는 눈이다.
마당 수돗가에 철없이 놀다 온 손자들을 씻기고 있는 며느리를 응시하며
있던 찰나였다.
*"아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오늘 도니?"
"네 어머니...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애비가 여기저기 수소문 중에 있습니다."
L씨의 어머니인 주인 할머니는 하릴없이 옥상에 오르락내리락하거나 마루 귀퉁이에 있던 기타를 만져본다.
벌써 여드레가 지났다.
막내아들이 친구집에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서 좁은 마당을 빙빙 돌거나 수돗가에 앉아 있던 모습을 어제도 보았다.
마치 낡은 필름을 계속 돌려 보는 것 마냥 같은 자리에서 또 반대편 같은 자리로
같은 자세로 몸을 이동시킬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중정을 품은, ㅁ자 형태로 방을 놓아 최대한 많은 자취생을 양생 하는 그런 구조의 집이었다. 그 집에서 제일 안 바쁜 막내아들은 저녁시간이나 밤이면 기타를 둘러매고 옥상에 올라갔다.
큰 키와 네모난 얼굴에 핏기 없는 하얀 피부색을 타고 난 그는 기타에도 재간이 있었다.
그가 울려대는 음들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늘 단조의 형상으로 흘러내렸다.
밤마다 울려대는 통에 자취생들이 화를 낼 법도 하나 왠지 모를 애달픔이 자취생의 애환을 걷어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날도 구릿빛 세숫대야에 널어야 할 빨래를 들고 계단을 밟고 있었다.
좁고 ㄴ자로 틀어진 가느다란 층계를 아슬아슬 타고 있을 때였다.
"조심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번도 말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조카들과 놀아줄 때도 정확한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의성어의 구르는 듯한 발음이 개구쟁이 조카 둘을 더 개구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웃는 듯 마는 듯 희미한 미소만 늘 지을 뿐이었다.
"네에."
막내아들은 기타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둠 속에 기억나지 않는 눈빛. 단조의 음계로 가득 찬 듯한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막내아들 L의 모습이었다.*
(*-*까지는 사실을 근거로 한 픽션에 가깝다.)
그날 저녁.
주인 할머니는 하얗게 질려 주저앉으셨다.
뭐라고 얘기가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질 않는다.
사실은 이것이었다.
[막내아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듯했다.
그게 사진이었는지 물건이었는지 정확하진 않다. 그리고 바로 L 씨의 가족은 사복을 입은 경찰관을 따라 나갔다.]
그 무렵의 나는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컸다. 자꾸 옥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에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하얀 천이 씌어진 도로가의 그의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무섭게 만들었다. 더 어릴 때 그렇게도 죽음을 봐왔는데도 말이다.
그토록 젊은 나이의 그 남자 사람이 어디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가끔 이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키어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더 생생히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중국의 S시 도로에서 밤늦은 시간 운전을 하고 있었다.
도로 노면도 좋지 않은 데다 가로등도 시원치 않은 2012년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무런 사고의 흔적도 없는 도로에 바람에 나풀거리는 사람 모양의 흰색 천을 길 중앙에 펼쳐 놓았다.
분명히 죽은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던 거 같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그 흰 사람 모양의 천 주위에서 지나가는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 있었다.
그때 나는 불현듯 기타 치던 그 막내아들의 영혼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은 여러 가지 기억과 오버랩되어 덧붙여지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여 오랫동안
우리 가슴 속에 경첩을 두른 쇳덩이마냥 때론 온 감각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