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타이밍.

by 물에물탄듯

#14. 타이밍. (#13 이어서)

강릉이와 서로 호감을 표현하고 더욱 친해졌다. 학년별로 강의실 위치가 달라서 잘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이나 수업이 마칠 쯤에는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쁜 표정으로 신경 써서 다녔다. 그러다가 마주치면 강릉이는 활짝 웃어주었다. 강릉이는 먼저 수업이 끝나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기 전 정아에게 연락을 했다. 5층 계단에서 보자고. 수업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심장이 떨리고, 손에서 거울을 놓지도 못했다. 마지막까지 거울을 한번 더 보고 5층 계단으로 가면 섬유유연제 향기로 나를 맞아주면서 간식을 손에 챙겨줬다. 그리고 강릉이와는 2달 후 정식으로 만나보기로 했다. 여전히 비밀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제는 5층 계단에서 만나면 강릉이는 정아를 꼭 안아줬다. 정아는 혹시나 들킬까 봐 발버둥을 쳤고, 강릉이는 재미있어서 더 장난을 쳤다. 체육대회가 열린 날에도 아무도 없는 학교 건물 5층 계단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는 비밀 아지트를 몇 군데 만들어 놓고 틈틈이 만났다. 정아는 비밀연애가 이렇게 설레고 막 걸음을 사뿐사뿐 걷게 할 줄 그제야 알았다. 11명에게 강릉이와의 연애를 오픈하고 난 후 모든 학생들이 알게 되었다. 우리는 눈에 안 띄게 더 조심하게 행동했다. 전임 교수님들께서도 학생들에게 들어서 정아에게 따로 “싸우지 말고 잘 만나~”라고 해주셨다. 문득 강릉이와 정아가 학교생활을 반듯하게 하고 있으니 모두가 이쁘게 봐줬던 것 같았다.


강릉이는 B형 남자, 정아는 A형 여자다. 하지만 강릉이가 A형, 정아가 B형 같았다. 경상도 여자였던 정아는 유난히 사투리도 심했고 억양도 강했지만 강릉이는 상냥했고 다정했다. 이쁜 말로 실습과 학업을 병행하던 정아에게 응원을 해줬고, 지지해줬다. 정아는 남자 친구가 생겨도 계속 붙어있거나 매일 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평소 각자의 일상에서 시간을 가지고, 자기 계발 준비도 하면서 주말에 이쁜 모습으로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강릉이는 자주 보고 싶어 했다. 우리는 둘 다 기숙사에서 살아서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정아의 스타일을 맞춰 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강릉이는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외로웠을 것 같다.

강릉이와는 용돈을 아껴서 놀러를 다녔다. 용돈을 넉넉하게 받지 않아서 좋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우리 둘은 보기만 해도 웃고 대화가 잘 통했다. 음식 하나 사서 나눠먹고, 부산 여행 은 기차를 입석으로 예매해서 약 2시간을 서서 가도 재미있었다. 다투거나 나쁜 기억 없이 20대 시절 연애 기억을 아련하게 남게 해 줘서 강릉이에게 많이 고맙다.


정아는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계속 기숙사에서 살고, 강릉이는 겨울방학 후 강릉 본가로 갔다. 2주에 한 번은 강릉이가 버스 5시간을 타고 정아가 있는 곳으로 와줬다. 그렇게 2달을 만났고, 정아는 취직을 하면서 경남으로 더 내려갔다. 강릉이는 더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정아를 보러 와줬고 힘든 내색 없이 버스 정류장 앞에서 어김없이 안아줬다. 정아는 취직 후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교대근무에 매일 늦은 퇴근에 (퇴근을 안 시켜준 것과 같다.)... 이것이 요즘 언어로 간호사 태움이다. 살이 점점 8KG 넘게 빠졌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고 매일 악몽을 꿨다. 강릉이는 그런 정아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격려해줬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입대를 했다. 강릉이는 손편지도 자주 써줬지만, 정아는 지옥 같은 태움 시기를 보내면서 답장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근무시간 때 물도 마음 편하게 한잔 못 마셨고 매일 혼나기 일쑤였다. 강릉이에게는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너무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로 부모님들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 여사친은 강릉이에게 표현이 자유로웠다. 둘 사이를 최대한 인정해주었고, 강릉이도 정아 옆에 있었으므로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릉이가 군대에 있을 때, 인터넷 편지를 쓰기 위해 사이트에 접속한 날 정아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인터넷 편지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어서 여사친 이름으로 올라와 있는 편지 내용을 읽어보았다. 편지 내용은

‘네가 없어서 나는 매일 우울해’

‘너 군대 제대하면 나랑 살자’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나는 너뿐이고, 너도 나뿐이야.’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당장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정아는 혼자 상상에 빠졌다. 상상 속에 정아 자신을 밀어 넣고 여사친을 보러 갔던 날, 여사친과 전화통화, 여사친과 술 마시던 날. 모든 날을 상상 속에 넣었다. 직장도 힘들었는데 이 상상도 정아를 힘들게 했다. 강릉이가 사격 1등을 하고 전화찬스를 받고 정아에게 전화를 처음으로 한 날이었다. 정아는 미안하지만 여사친 편지 내용에 대해 물어봤다. 강릉이는

“원래 그래~ 원래 그렇게 말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고, 통화는 끝났다.


강릉이의 대답은 미웠다.

정아는 제정신도 아니었다. 직장 생활에 태움으로 울었지만 그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다들 힘든 것 같아서... 하지만 숙이(정아 어머니)는 알아채고 힘들면 당장 그만둬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는 내 딸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만둬라고 말했다며 더 큰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정아는 최대한 견뎠다. 인계를 하는데 잘못된 것을 알려주지 않고 계속 “다시. 다시”. 책상에 올려놓은 손을 볼펜으로 탁탁 치는 건 기본이었다. 주말에 수선생님이 없으시면 물도 못 마시고 스테이션 지킴이다. 선생님들은 간호사실에 들어가서 티타임을 가졌다. 모두 모인 회의 시간 수 선생님께서

“신규들 괜찮아? 할만해?”

물어보셨다. 정아의 등에 누군가가 볼펜으로 찌르며 대답을 잘해라고 강요했다. 태어나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 것이 처음이었다. 4명의 동기가 입사했지만 1명 퇴사. 1명 잠수. 1명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날 아침 출근을 아버지께서 시켜주셨다. 아버지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직장 문 앞에 섰는데 문득 숨이 목까지 차서 안 나왔다. 그리고 ‘오늘 들어가면 나는 죽겠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다. 숨을 억지로 쉬고 헉헉거리며 직장 옆 동기 기숙사로 들어갔다. 정아는 출근하지 않고 잠수를 탔다. 우리 계열에서는 잠수 타는 신규도 종종 있었지만, 정아가 잠수를 탈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정아는 핸드폰을 끄고 대구 친구 자취방으로 갔다. 대구에 도착 후 핸드폰을 켜니 전화, 문자가 난리가 났다.

정아는 숙이(정아의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미안해. 근데 나 오늘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았어. 살고 싶어서 도망쳤어.”

숙이는 “괜찮다. 정아. 엄마가 알았으니깐 됐다. 그래도 병원에 연락은 남기자. 그리고 친구 집에서 쉬다가 내려와. 엄마가 용돈 보내 놓을게.”

정아는 펑펑 울었다.

친구는 정아보다 한 학년을 늦게 졸업하게 되어 학교에 간 상태였다.

정아는 죄인이 된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했고 수 선생님께서 사직서 쓰러 방문하라고 했다.

챙겨주던 1년 차 위에 선배는 위로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정아는 친구 방에 누워서 또 울었다.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았고, 학생 때부터 ‘이 계열은 한 다리 건너면 다~안다’는 소리에 나는 이 직업을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강릉이에게 전화해서 울고 싶었지만 강릉이는 없었고, 인터넷 편지 사이트에는 여사친의 열 받는 소리가 또 업데이트되어 올라와 있었다. 이런 상황이 모두 싫었다.

정아는 강릉이에게 헤어지자고 편지를 썼다. 주말에 군대 번호로 강릉이가 울며 전화를 했다. 정아도 미안하다며 울고, 강릉이도 미안하다며 울고 서로를 마무리했다.


강릉이가 제대 후 연락이 왔다. 우리는 만나지는 않았지만 1년에 2번 정도 안부를 묻곤 했다. 그리고 정아가 간호사 9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쉴 때, 강릉에 초대해줘서 기차를 타고 갔다. KTX를 타고 강릉까지 갔다. 서울역에서 갈아타고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강릉이와 사귈 때도 가보지 못했던 거리를 지금 가보았다. 엉덩이 뼈가 너무 아팠다.

‘강릉이는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의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했구나.’

강릉역까지 마중 나온 강릉이는 여전히 상냥했다. 둘은 각자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강릉이가 다녔던 학교도 구경하고 9년이 흘러, 헤어지던 순간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여사친과는 연락을 끊은 상태이고,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해명해줬다.

강원도에서 내려오면서 정아는 생각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이지만, 이렇게 내가 잘되기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을 만나 본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고, 그리고 강릉이에게 항상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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