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pm
#5. 어부바
숙이는 정아를 너무 어렵게 낳았기 때문에 정아를 잃어버릴까 봐 종일 지켜봤다고 한다. 정아는 성장하면서 다른 애들처럼 건강하지는 못했다. 기관지가 약하고 천식으로 감기에 자주 걸려서 병원을 자주 다녔다. 6살 때 숙이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에 다녔다. 푸른 미술학원. 오전에는 5-7세 애들이 어린이집처럼 다녔다. 정아는 어린 집에 가서 놀다가도 숨이 차고 기침이 심해서 뛰어놀지는 못하고 앉아서 노는 게 전부였다. 정아는 가을이 지나 차가운 겨울이 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 겨울도 어김없이 정아는 폐렴에 걸려 감기약을 먹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몸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했다. 숙이는 정아와 터울이 나는 둘째 딸을 돌보아야 했기에 어린이집에 올 수가 없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시멘트 공장에서 한걸음에 걸어오셨다. 할아버지 자가용을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 모두가 사용했기 때문에 항상 공장에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시멘트 공장과 어린이 집은 걸어서 40분 이상은 걸리는 곳이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택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린이집 문을 열며, 선생님께 먼저 인사를 하시고 나를 보고 웃어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왔으니 걱정 말거라'라는 눈빛이었다. 정아는 숨이 차기 시작하면 무서웠다. 아버지의 모습은 흙이 묻은 작업복에 투박하고 무거운 작업화를 신으셨고, 뛰어오셔서 숨은 거칠었다. 어린이 집을 나와 아버지께서는 어부바를 하자고 했지만 정아는 손을 잡고 병원까지 걸어갔다. 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은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까지 지름길이 있는데, 그곳은 다리 밑 길이었기에 어둡고, 개울이 있었다. 그곳은 하수구 냄새가 나고 쥐가 있을 것 같아서 정아가 싫어하는 길이었다. 그 길 앞에 서면 아버지는 정아를 업으셨다. 아버지의 등은 자식 걱정으로 뜨거웠고, 땀 냄새로 덮였다. 이 길이 오늘이 마지막이길. 정아가 아프지 않길.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 지하 길이 지나면 밝은 빛이 비치며,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을 보는 것도 주사도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 시멘트 공장까지 또 아버지께서 업어주셨다. 아버지께서는 공장 안에 있던 할아버지 방에 정아를 눕혀놓고 얼굴을 매만져주시고, 다시 시멘트 작업을 하러 가셨다.
정아는 지하 하수구 공간의 냄새와 아버지의 땀냄새를 기억한다. 정아의 아버지는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 확인하고 덮어주고 가는 아버지시며, 정아가 고3 때 학업 스트레스로 예민해지고 과민해져서 괜히 부모님께 짜증을 내고, 우울해할 때도, 자고 있던 정아 방에 들어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다 지나간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이시고, 정아가 번아웃 증후군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6개월을 집에서만 보낼 때, TV에서 강원도 산불이 난 것을 보고 나무가 내가 된 것 같아 40분을 울 때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섭섭해하며 울 때도, 아버지는 눈물을 닦아주시며 정아의 동생에게 '언니가 조금 아프니깐 우리가 기다려주자'라고 하시고 정아에게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안아주시며, '사랑한다 딸아'라고 해주시는 분이시다. 아버지는 정아의 마음을 만들어주신 분이시다.
#6. 정아의 아버지.
정아의 아버지는 5남매 중 넷째였다. 장남이 아니고 막내아들이 아니라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어릴 때 한 달을 사촌집에서 보내고 집에 와도 할머니께서는 한 달을 없었는지도 모르셨다고 한다. 장남과 막내가 할머니 집을 올 때면 백숙을 만드셨고, 아버지께서 집에 올 때면 신발도 벗기 전에 집에서 밥을 먹고 오라고 하셨다. 장남, 막내가 아니어서 부도난 시멘트 회사에서 몇 번이나 나오겠다고 했을 때, 정아의 조부모님들은 '너만 먹고살려고 나가면 큰 형님은 어쩌냐, 동생이 의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쩌냐'라고 하며 정아의 아버지의 제일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 부분은 '효'라는 것. 그놈의 '효'이다.
동생이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할머니는 숙이에게 '시동생 의대 등록금 못 내서 부끄럽지 않게 미리 준비해야지'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숙이는 돈이 없어 시집올 때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다이아반지를 팔았다. 그 시대는 그랬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습이 되어 장남도 막내도 정아의 아버지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사랑하는 형이었고, 동생이었다. 그놈의 사랑하는 형제였다.
시간이 지나도 가정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주셨던 아파트는 큰 형님 보증을 잘 못서서 넘어가게 되었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 듣고 4명의 가족은 길거리 주택 월세방으로 이사를 갔다. 세상 불공평한 것은 큰 형님은 새로 시작한 농장이 잘돼서 농장 평수를 넓히고 동생은 개인 병원을 개원했고, 아주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은 월세로 이사 간 아버지께서 도와달라고 할까 봐. 가까이도 오지 않았다. 정아의 아버지는 비 오는 날만 쉬었고, 그 비 오는 날도 일만 하던 사람이 쉬니깐 소화가 안돼서 소화제를 드셨다. 그렇게 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월세 단칸방이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무너졌다. 정아가 고등학생 때 하교를 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의 양쪽 허벅지에 검은색이 묻어있었다. 정아는 어머니에게 '아빠 다리에 뭐 묻은 거야?'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다. 시멘트 공장을 정리하고 빚만 지고 나온 아버지께서 새로 시작한 일은 11톤 트럭 운전이었다. 11톤 트럭 운전 중에 심장이 빨리 뛰며 숨이 차고 눈앞이 희미해졌다고 한다. 큰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은 되고 눈은 감기며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데 그 순간을 깨기 위해 차에 있던 뾰족한 물건으로 양쪽 허벅지를 찌르셨다고 한다. 검은색은 멍이 든 자국이었다. 갓길에 정차하고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큰일이 있었지만 아무런 말씀도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몇 번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져서 응급실을 가셨다. 그때마다 정아는 아버지를 따라갔고 함께 응급실에 있었다. 아버지는 공황장애를 진단받으셨다. 아버지께서는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토록 사랑하던 큰 형님과 동생에게 위로 전화, 문자 한 통 받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희생은 당연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큰 형님의 '몸은 괜찮나?', 의사 동생의 '형님 요즘은 괜찮나?'라는 말 한마디면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아는 그날 아버지의 검은색멍과 원망과 분노를 자신에게 담았다. 아버지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그들도 누군가에게, 알아주지 않는 허무하고 허탈한 희생을 죽을 때까지 하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정아 자신이 약해질 때면 검은색 멍을 꺼내어 보고 다시 담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