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혜야

by 물에물탄듯

#7. 혜야 1.


정아와 여동생은 4살 차이가 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동생은 정아에게 동생 이상의 존재이다. 여동생은 정아와 반대로 성격이 여유롭다. 여유로움으로 지각을 열심히 해서 같은 반 친구들의 배를 간식으로 채워줬다. 우리 집은 학교와 딱 10분 거리였다. 초등학생 때는 어김없이 늦게 일어나 시간을 보고 놀래 학교까지 뛰어가다가 되돌아온 적이 있었다. 책가방을 안 메고 갔던 것이다. 그게 중학생 때까지 2번 정도 있었다.

정아와 여동생은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동생과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큰 창문에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은 꼭 어린 정아와 동생 눈에 제일 커 보였던 국 도자기 그릇에 라면 하나를 반 쪼개고 라면스프도 똑같이 반 쪼개서 넣어 뜨거운 물을 넣어 먹었다. 끓인 라면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아파트라기보다 빌라 정도여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이웃들이 왔다 갔다 해도 돗자리를 펴고 현관문 앞에서 여동생과 노는 시간은 너무 즐거웠다. 그 놀이는 월세집 주택으로 이사 가서도 이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택 지붕 처방 끝 안쪽까지 돗자리를 펴고 용돈이 있어도 같은 방식으로 라면을 먹었다. 주택은 더 좋았다. 우리만 있어서 비 오는 소리에 음악까지 더해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이야기 나눴다. 그때가 여동생도 좋았는지 정아가 대학생이 되어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본가에 내려올 때면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라면을 먹자고 했다. 그 시간 동안 여동생은 내가 없는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쉼 없이 이야기했다. 거의 절반이 불만토로였다.



#8. 혜야 2.

혜야는 태어날 때 구순열로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했다. 구순열 상처는 얼굴을 보면 바로 티가 나서 아기일 때는 한동안 집에만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혜야한테는 구순열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기일 때 유리에 다쳤다고만 했다. 4살 때 2차 수술을 했고, 20살 때 3차 수술을 했고, 25살 때는 인중 성형 수술을 했다. 20살이 되어 3차 수술이 하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을 때는 이미 구순열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혜야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병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혜야는 초, 중, 고, 대학교 새 학기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친구들은 무심결에 ‘코 밑에 왜 다쳤어?’라고 물었지만 혜야는 수십, 수백 명에게 받는 질문이었다. 혜야는 우리에게는 절대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미안해하실까 봐 그랬다고 한다. 혜야는 크면서 방어적인 성격이 도드라졌다. 낯도 많이 가리고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부모님은 혜야의 자존감이 낮아지게 될 까 봐 항상 ‘멋있다. 사랑한다. 최고야’ 등 많은 표현을 해주면서도 혜야가 콤플렉스에 집중할 때는 매섭게 혼을 냈다. 아버지께서는 혜야는 충분히 예쁘고 똑똑하고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남과 비교해서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혜야가 자신의 콤플렉스에 빠져 스스로가 자신을 미워할까 봐 걱정하셨다. 혜야도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었다. 아버지는 혜야가 4살 때, 큰 환의를 입고 의사 선생님 손을 잡고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손 흔들어 주는 모습을 아직도 못 잊고 계신다. 혜야는 지금 성인이 되어 여군으로 근무 중이다. 부모님과 정아의 자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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