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아의 시계.

by 물에물탄듯

#9. 정아의 시계

정아는 3살쯤 어머니께서 지인분을 만나러 집 근처 다방에서 차 한잔 하시는 동안 정아에게 요구르트를 주고 옆에 앉혀 놓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낮에 엄마 친구 만나러 다방에 갔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엄마 친구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소유욕이 남달랐다. 아버지 동창 모임에서 버스를 대질하여 여행을 갈 때면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어머니 옆으로 오지도 못하게 했다. 또래 친구들은 모여 놀거나 어른들에게는 관심도 없었는데 유난히 정아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였다.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은 쿵짝쿵짝 음악소리에 춤을 추시는 어른들도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흥이 많으셔서 즐겁게 노셨지만 어머니는 움직이지도 못하시고 정아 옆에 앉아있었다. 정아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아프셨기 때문에 약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아버지 친구분들 중 자녀들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정아를 ‘보통 성격 아니지~’라고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신다고 한다. 물론 아버지께도 늦은 시각 어머니와 동생이 잠을 자도 혼자 현관문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가 귀가하시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잠에 들었다고 한다.


정아의 지금 성격은 학창 시절에 영향이 크다. 변한 것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변해졌다. 정아는 수업 순서에 맞게 책가방을 정리했고, 필기도구도 연필은 뾰족하게, 지우개 끝도 직사각형 모양으로, 색깔 순서까지 맞췄다. 책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정아는 많이 바뀌었다. 제비뽑기로 방식을 이용했지만 1년에 5번이나 짝이 된 현이 덕분이었다. 현이는 책도 학교에 잘 들고 오지 않아 수업시간에 정아와 같이 보는 날이 많았고, 필기도구는 짐일 뿐이었다. 그리고 욕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정아는 책이 더러워지고 연필을 빌려주고 나면 없어지는 것은 일상이었고 수업시간에 현이가 장난을 쳐서 혼나는 횟수도 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피자 만들기 시간에 친구의 장난으로 정아의 옷에 음식이 묻어 냄새가 났다. 정아가 짜증이 나서 예민하게 반응을 하니, 현이가 옆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지랄’이라고 하고 자기 옷에 묻은 음식을 보여주면서 ‘니만 묻었나’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정아는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깨달았다. ‘아~ 무거워도 모든 책을 집에 가지고 다니면서 살 이유가 없구나.. 연필도 이렇게 이쁘게 깍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냥 연필 깎기를 학교에 두고 다니면 되지. 욕도 할 수도 있구나. 아.. 너무 철저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정아는 조금 내려놓았고 사람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것도 배웠다. 현이와는 6학년 때까지 같은 반을 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며 현이와는 연이 끊겼지만 정아의 성격 변화에 1등 공신이다.


4학년 때는 같은 아파트 친구 진이랑 가까워졌다. 서로 놀이터에서 보면 노는 정도였는데, 같은 반이 되면서 친해졌다. 진이는 정아보다 키도 컸고, 목소리도 컸고, 용감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여자, 남자 상관없이 싸웠다. 매일 학교를 같이 가게 되었고 진이를 중심으로 여자 친구들이 모였다. 친화력이 좋은 진이 덕분에 조회대 위에서 다른 반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며 다 친해졌고, 소심한 성격과 심한 몸치지만 춤 공연을 같이 하자고 해서 학예회 무대, 수련회 무대 모두 서봤다. 정아랑 전혀 다른 성격의 진이는 정아에게 괴롭히는 남자애들에게 확실하게 응징하는 걸 알려줬다. 정아의 손목을 잡고 괴롭히던 남자애 앞에서 똑같이 때리라고 하고 1대 더 때려줬다. 진이는 공부도 살벌하게 잘했다. 진이와는 중학교 때까지 같은 학원을 다녔고 학교도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정아가 이사를 가고 학교에서도 다른 반이 되고 각자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조금은 멀어졌지만 진이는 정아의 든든한 친구였다. 정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학원 친구들 모임에서 간호과 합격 통보를 들었다. 진이도 있었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리고 간호사가 되어, 첫 직장 생활에 너무 괴로워할 때는 술집에서 제일 큰 목소리로 ‘누가 괴롭히는데, 우리 애들 다 같이 가서 얼굴 좀 보자. 다들 시간 비워라.’라고 말해줬다. 그 위로는 진이만 할 수 있는 든든함이었다. 진이를 주축으로 동창들과 헤어질 때면 도로 한 중앙에서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외친다. 멤버들이 부끄럽다고 해도 외치지 않으면 집에 갈 수가 없다. 정아에게 진이는 당당함을 가르쳐준 친구다. 큰소리칠 때는 치고, 인정할 때는 인정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확실히 놀고. 태어나기를 불안도가 높았던 정이에게 진이의 한마디는 간호사 생활 10년을 넘기며 ‘나에게는 같이 화를 내주는 친구가 있다’라는 것만으로 정아의 자존감을 올려줬다.




- 글을 적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잘 쓰고 싶은 생각에 드네요.

제 글은 특별함이 없습니다. 그냥 소설로 MBTI 중 ESFJ인 '정아'라는 주인공을 상상하시고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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