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신입생 환영회.
정아는 먼 미래를 상상하는 성격이 아니다. 거의 눈앞에 일과 상상해도 한 두 달 뒤? 정도까지의 미래를 생각할 뿐이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교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잘했던 행동 같다. 간호대학은 그냥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었다. 졸업까지 정해진 커리큘럼. 방학의 여유 따위는 없고 과별 실습하기 바빴다. 그리고 휴학도 생각할 틈도 없었고 휴학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없어진 문화지만, 정아 때에는 신입생 환영회라는 것이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이름만 듣고 대학 입학 후 친해진 친구들과 이쁘게 차려 입고 참석했다. 큰 강의실에 1학년이 먼저 앉고, 2학년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살벌했다. 곧이어 3학년이 들어오니 2학년이 전부 의자에서 일어나 90도 인사를 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이었다. 2학년 대표가 환영회를 진행하는데 ‘직속’을 뽑는다고 했다. ‘직속’이란 ‘시스터’ 제도로 대학생활을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멘토가 생기는 것이다. 정아는 2학년 선배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았다. 뚜려지게 보지는 못하고 반쯤 뜬 눈으로 살짝살짝 보았다. 정면 옆으로 라이더 재킷을 입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긴 머리를 풀어놓은 이쁜 여자 선배가 있었다. 껌을 씹고 있었고 그 선배의 주변 사람들을 보니 다들 무섭게 생겼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분은 안 걸리고 싶다. 아..’ 그리고 제비뽑기가 정아의 순서가 되었다. 중앙으로 나가 이름과 나이 정도를 소개하고 제비뽑기를 했다. “저의 선배는 000입니다.”라고 외치자 그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던 분이 일어나셨다. ‘아., 망했다..’ 선배는 무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셨다. 정아가 자리에 들어오자 옆에 친구들이 손을 잡아줬다.. 직속 선배가 모두 정해지고 난 후 3학년 선배가 먼저 나갔다. 3학년 과대가 소리를 쳤다. “2학년!! 운동장으로!!!” 2학년이 갑자기 막 계단으로 뛰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은 선배는 들고 뛰어갔다. 이게 뭔가 싶었다. 1학년만 남은 상태에서. 심지어 다들 친하지 않아서 그냥 조용했다. 한 40분이 지났을까 2학년 과대가 왔다. “1학년 운동장으로!!!” 우리는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알아서 구두를 벗고 뛰어내려 갔다. 운동장에는 2학년이 줄 맞춰 서있었고, 3학년이 운동장 벤츠 쪽에 서있었다. 1학년도 줄 맞춰 섰다. 3학년 선배들이 가고, 2학년 선배들이 1학년들에게 기합을 줬다. 학교 생활 규칙을 이야기해줬다. “동기는 하나다”라고 외치면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십 번 했다. 운동장을 줄 맞춰 뛰었다. 당연히 몸이 아픈 사람은 열외였다. 하지만 그건 더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기에 정아는 끝까지 뛰었다. 환영회는 3월에 열렸지만 날씨는 겨울이었다. 구두를 왜 신고 갔을까.. 후회를 십만 번 했다. 환영회가 끝나고 그 라이더 선배가 나를 불렀다. 다시 한번 학교생활에 대한 주의를 무섭게 줬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고 조금 벗어난 곳에서 작은 목소리로 “수고했어~ 잘 견뎠고, 다음에 맛있는 것 먹자. 오늘은 기숙사 가서 바로 푹 자. 안 그럼 몸살 나니깐.” 정아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당근과 채찍을 정확히 주는 능력이 있는 선배였던 것이다.
혹독한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룸메이트도 같은 과 친구였다. 집에서 등교하는 친구들도 다 같이 기숙사에 들어갔다. 정말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냥 룸메랑 나랑은 우리 기숙사에 가서 정리하고 집에 가라고 했다. 스타킹이고 양말이고 다 젖어서 그대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 들어와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울고 웃었다. 진짜 동기는 하나가 되어 모르는 친구들이 없었고, 다들 급속도로 친해졌다. 신입생 환영회는 학교마다 달랐지만 이 학과가 있는 학교에는 꼭 있는 문화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문화지만, 대학생이라서 풀어질 수 있는 질서들이 고등학교 때보다 더 잡혔다. 수업시간 태도부터 병원 실습 태도까지. 인정할 수 없다면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기에 모두들 문화를 받아들였다. 또 직속 문화로 정아의 태도가 나쁘면 선배가 욕을 먹어서 더더욱 태도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라이더 재킷 선배는 헉했던 것과 달리 2학년에서도 파워가 강하여 정아에게 따로 뭐라고 하는 선배는 있을 수 없었고 동기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병원 실습 팁부터 공부노트 정리까지 챙겨주고 기숙사에서 나와 자취를 할때는 집 가까이 고깃집에서 밥도 많이 사줬다. 선배는 2학년이었지만 다른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현역인 3학년 선배보다도 많아서 둘은 어색한 사이었지만 정아가 들어가면서 사이가 조금 누그러졌다고 한다. 정아는 가끔 선배가 생각난다.
그 후 정아의 직속 후배는 기대와 달리 모두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이 되어서. 실제적인 직속 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