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펜으로는 못 만드나요?
봄에 3D 펜을 하나 샀습니다. 지난 겨울쯤 유튜브 바다를 떠다니다가 3D 펜 장인 사나고 님 채널을 발견한 것이 문제입니다. 보고, 보고, 또 봤습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사람은 매일 보는 것을 탐합니다. 흉내 욕심이 나날이 커집니다. 결국, 손재주도 없으면서 덜컥 펜과 필라멘트를 샀습니다.
손에 자주 닿는 사소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부수고 붙이고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3D 펜이 딱인데 왜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소품들을 만들다 보니 신기하고 신납니다. 필라멘트를 더 삽니다. 인두처럼 쓰는 우드버닝 툴을 삽니다. 작고 힘센 전동 그라인더를 삽니다. 에폭시 수지를 삽니다. 어디 자랑할 만큼은 못 돼도 어느 정도 생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조적으로 적용이 어려운 분야를 제외하면, 일상에서 쓰는 것들은 큰 제약 없이 만들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수공예와 관련된 여러 채널들을 발견합니다. 세상에 조물주가 어찌나 많은지 모릅니다. 쌓고 붙이고 갈고 칠하고,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손으로 쪼물쪼물 못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만듭니다. 조그만 피규어부터 실제 크기 밀랍 인형까지, 마치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빚어냅니다. 그래도 생명까지 손으로 빚어내지는 못하겠지, 싶습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진짜 사람도 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산부인과에 가면 대기실이 넘치도록 난임 부부들이 앉아 있고 서 있습니다. 사람 만들러 온 분들입니다. 인공 수정이든 시험관이든 본질은 똑같습니다. 사람 생명을 손으로 빚어 몸속에 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손으로 만드나 싶지만 생각보다 별 일 아닌가 봅니다. 다들 잘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만 안 되면 섭섭합니다. 두 번 안 되면 화가 납니다. 여러 번 안 되면 억울합니다. 안 아프려고 오는 게 병원인데 올 때마다 더 아픕니다.
사람 만들어 주는 조물주 선생님께 시간과 재물과 정성을 바쳤는데, 관객처럼 남들 만드는 거 구경만 하고 왔습니다. 남의 손으로 못 빚는다면 내 손으로 빚을 수는 없나, 3D 펜으로 내 자식은 못 만드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애초에 내 손으로 못 만들어 남의 손 빌리러 갔던 거였습니다. 한숨 섞인 웃음을, 아니 웃음 섞인 한숨을 픽 내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