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했냐고 물으시면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를 많이도 옮겨 다녔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어찌나 가슴에 와닿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열심히도 쫓아다녔습니다. 손에는 희망의 그림자만 남고 얻은 것은 없습니다. 희망이 너무 가벼워서 팔랑팔랑 도망가는 것인지, 너무 무거워서 제 힘으로는 못 들어올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대 의학의 성취를 함부로 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사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난임 시술은 정해져 있고 모르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위들 중 하나를, '환자'의 상태에 따라 미세조정하며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되면 그걸로 끝인데, 안 되면 이유가 수백 가지입니다.
선생님들과 상담하면서 많은 얘기를 듣습니다. 아내의 몸 상태는 어떻고, 어디가 안 좋고 무엇이 그나마 다행이며, 이번엔, 다음엔 어떻게 할지...... 듣다 보면 선생님들의 특징이 제각각입니다. 아내에게 옆집 언니처럼 쫑알쫑알 한다는 선생님, 무뚝뚝하고 별 말 없는 선생님, 입 아프게 열심히도 설명하는 선생님,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찾았던 송곳 선생님만큼 기억에 남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송곳처럼 너무나도 직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뿐인 아내의 몸으로 더 이상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쯤, 송곳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난임 엄마들의 솔직하지만 조심스러운 후기가 직설적이라고 하면 정말 직설적인 것입니다. 그래도 실력은 좋다고 하니까, 실력 좋은 분의 선고라면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이번엔 되겠지' 같은 희망이 아닌, '제발 큰 문제는 없기를, 늦어도 끝은 아니기를' 따위의 희망의 그림자를 걸쳐 입고 송곳 선생님 앞에 앉았습니다. 재판 기록처럼 쌓인 두터운 진료 기록 뭉치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드립니다. 조용한 진료실을 메우는 휙, 휙, 종이 넘기는 소리가 귀를 뚫고 가슴으로 들어와 심장을 때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송곳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동안 뭐 했어요? 이거 왜 했어요? 이건 왜 안 했어요?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나도 어디 가면 똑똑하단 소리 듣지만 그래도 병원 갈 때는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살면서 남의 말 이렇게 열심히 들은 적 없습니다. 내가 함부로 판단할 일 아니니까 전문가 의견 고분고분 따랐습니다. 우리 마누라 수술도 하고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됐습니다. 잘 안 돼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할 생각조차 안 났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상태로는 착상을 해도 배아가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그렇게 듣기 싫어 외면하던 그 말을 결국 듣고야 맙니다. 듣고 나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철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린애처럼 우는 아내를 앞에 두고 송곳 선생님은 몇 마디를 더 했지만 기억이 안 납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저까지 울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안 했습니다. 어쨌든 들을 말은 다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손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한때 인간의 능력은 적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말은 뛰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듯이,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송곳 선생님 목소리 들은 지가 벌써 일 년입니다. 아직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