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싫어
주사 잘 맞는 아이였습니다. 주사바늘을 보는 건 무서웠지만 안 보면 그만입니다. 쓴 약도 꿀떡꿀떡 잘 삼켰습니다. 병원 갈 일 있으면 꼬박꼬박 잘 갔습니다. 아- 하고, 팔 걷고, 엉덩이 까고 고분고분 말 잘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습니다.
배란 유도제인 오비드렐 주사는 근처 병원에 가서 놔달라고 해도 되지만, 대부분 집에서 맞습니다. 주사가 무서워서 남편이 놔주는 집도 많다는데, 아내는 제가 놔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알람 노릇만 했습니다. 때 되면 오비드렐~ 에녹사파린~ 하고 호들갑 떨면서 외치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웃으면서 주사기를 챙겨들고 옆방으로 가서 혼자 조용히 주사 잘 놓고, 약도 잘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맞는 주사가 유독 미웠던 기억이 납니다. 몸에 바늘 꽂고 약 달고 사는 건 아내인데, 한 마디 불평 없이 잘만 참아내는데, 왜 주사 맞는 사람 따로 있고 불평하는 사람 따로 있었을까요. 내가 맞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 마누라 몸에 놓는 주사는 왜 그렇게 싫었을까요. 꼬박꼬박 챙겨먹는 약들도 왜 그리 싫었을까요.
주사 무용론(無庸論) 따위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자식이 생긴다니 신통방통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다만,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놈들이 남의 마누라 괴롭히네, 아프게 하네, 하고 괜히 성질 부릴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반복되는 실패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고맙고 밉고 지겨운 대상이라니, 내 마음 내가 모를 만 합니다.
얼마 전 코로나 백신을 맞았습니다. 간만에 맞는 주사입니다. 주사기를 보니 아내가 주사기 갖고 방으로 들어가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맞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니 역시 주사가 싫은 건 아니었습니다. 곧 아내도 백신 주사를 맞을 텐데, 그놈도 싫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짜씩이 말이야, 정도는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