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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Nov 07. 2021

괜찮다고 말하지 마세요

"다들 괜찮으니까 너도 그래야 해"

우울증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흔해진 것이, 실제로 우울증 환자가 많아져서인지, 병원 문턱이 낮아져서인지, 우울증 진단율이 높아져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울증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진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ㅇㅇ정신병원’이라는 이름과 ‘미친놈들 가는 곳’이라는 사회의 인식 모두 변한 결과입니다. 약물과 상담의 힘으로 아픔을 줄여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진 것도 좋은 일입니다. 아, 많이들 병원을 찾는구나, 하고 힘내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해 주어, 병원 문턱을 조금 더 낮추는 데 기여합니다. 아픔을 많이 덜어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장점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세상만사 그렇듯이 부작용은 희한한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우울증이, 정확히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니 그 무게가 희석된 것입니다. 차라리 우울증이 희귀한 병이었다면, 잘 몰라서 함부로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 병원 갔더니 MSWD래, 희귀병이래.’라고 말하면, 일단 잘 모르니까 어버버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MSWD는 제맘대로 지어낸 말입니다. ManSung Woowool Disease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희귀하지가 않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 몇몇이 우울증을 겪은 것도 압니다. 약 먹는 사람도 몇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막 뱉습니다.


- 너 햇볕 많이 안 쬐고 실내에만 있어서 그래.

- ㅇㅇ 먹으면 좀 낫다더라.

- 그거 마음의 감기라고 하잖아, 약 먹으면 낫는 거야.


이해와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말들입니다. 유치원생이 인생에 대해 잔소리를 할 때는 귀여울 뿐만 아니라 더러 느끼는 바가 있기도 한데, 이 어른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스스로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말들이 좀 우습게 들리는 쪽이라면, 감정을 건드리고 슬프게 만드는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 사회생활하면서 힘든 일 없는 사람이 어딨냐. 다들 힘들어. 너 정도면 괜찮은 거야.


사실,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좋은 말들’ 식으로 소개되는 ‘힘내’, ‘잘 이겨내야지’ 등은 생각보다 많이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허탈하고 아무 소용없는 말로 들릴 뿐입니다. 하지만 저런 것들은 이해와 지식의 부족을 넘어 공감능력의 부족까지 더해져야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힘들다는 사람에게 뭔가를 푸시하겠다는 생각부터 한다면, 아마 어떤 고통도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허탈해지겠지만, 더 이상 우울증 얘기를 안 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쓰고 싶지 않아서 참 많이 조심합니다. 그렇지만 이 글만은 좀 써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조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써 봤자 소용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쓰는 김에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춰서, 불쾌한 내용이지만 몇 줄 더 쓰려고 합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우울증 환자인데 당신의 말 몇 마디에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유서에 당신 때문이라고 적고 회사 메일에 뿌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 딴에는 아는 지식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려고 했겠지만 역효과가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외우십시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니, 괜찮다고 말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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