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괜찮으니까 너도 그래야 해"
우울증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흔해진 것이, 실제로 우울증 환자가 많아져서인지, 병원 문턱이 낮아져서인지, 우울증 진단율이 높아져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울증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병원 문턱이 낮아진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ㅇㅇ정신병원’이라는 이름과 ‘미친놈들 가는 곳’이라는 사회의 인식 모두 변한 결과입니다. 약물과 상담의 힘으로 아픔을 줄여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진 것도 좋은 일입니다. 아, 많이들 병원을 찾는구나, 하고 힘내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해 주어, 병원 문턱을 조금 더 낮추는 데 기여합니다. 아픔을 많이 덜어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희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장점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세상만사 그렇듯이 부작용은 희한한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우울증이, 정확히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니 그 무게가 희석된 것입니다. 차라리 우울증이 희귀한 병이었다면, 잘 몰라서 함부로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 병원 갔더니 MSWD래, 희귀병이래.’라고 말하면, 일단 잘 모르니까 어버버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MSWD는 제맘대로 지어낸 말입니다. ManSung Woowool Disease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희귀하지가 않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 몇몇이 우울증을 겪은 것도 압니다. 약 먹는 사람도 몇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막 뱉습니다.
- 너 햇볕 많이 안 쬐고 실내에만 있어서 그래.
- ㅇㅇ 먹으면 좀 낫다더라.
- 그거 마음의 감기라고 하잖아, 약 먹으면 낫는 거야.
이해와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말들입니다. 유치원생이 인생에 대해 잔소리를 할 때는 귀여울 뿐만 아니라 더러 느끼는 바가 있기도 한데, 이 어른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스스로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말들이 좀 우습게 들리는 쪽이라면, 감정을 건드리고 슬프게 만드는 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 사회생활하면서 힘든 일 없는 사람이 어딨냐. 다들 힘들어. 너 정도면 괜찮은 거야.
사실,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좋은 말들’ 식으로 소개되는 ‘힘내’, ‘잘 이겨내야지’ 등은 생각보다 많이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허탈하고 아무 소용없는 말로 들릴 뿐입니다. 하지만 저런 것들은 이해와 지식의 부족을 넘어 공감능력의 부족까지 더해져야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힘들다는 사람에게 뭔가를 푸시하겠다는 생각부터 한다면, 아마 어떤 고통도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허탈해지겠지만, 더 이상 우울증 얘기를 안 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나쁘게 말하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쓰고 싶지 않아서 참 많이 조심합니다. 그렇지만 이 글만은 좀 써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조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써 봤자 소용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쓰는 김에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춰서, 불쾌한 내용이지만 몇 줄 더 쓰려고 합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우울증 환자인데 당신의 말 몇 마디에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유서에 당신 때문이라고 적고 회사 메일에 뿌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 딴에는 아는 지식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려고 했겠지만 역효과가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외우십시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이니, 괜찮다고 말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