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데리고 놀러오는 친구들 다 쫓아낸지 1,2년 되었을까, 코로나도 무섭고 우리만 둘인 것도 무서워 둘만 지내다 무슨 자신감인지 또 친구들을 들였습니다. 이번에도 우리만 둘이고 친구들은 셋, 셋입니다. 각각 일곱살 아들내미와 두살 딸내미 키우는 부부들입니다.
전날 오후 반차까지 내고 아내와 같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크래미 넣은 팽이버섯 전을 한 입 크기로 귀엽게 부치고, 갈비찜을 몇 시간씩 끓이고, 연어와 풀떼기 섞어 샐러드도 하고, 각종 야채 넣어서 오징어도 볶고, 손재주에 넘치는 월남쌈도 합니다.
어른들은 애 데리고 놀아주는 삼촌 덕에 한숨 돌리고, 아내는 그런 남편 구경하면서 와인 한 잔 하고, 삼촌은 열심히 조카 쫓아다니며 놉니다. 놀아주는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애나 어른이나 바쁩니다.
이제 좀 그만해야지, 여러 번 생각했지만 잘 놀아주는 삼촌 빙의하는 건 어찌 못 하나 봅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땀을 뻘뻘 흘립니다. 아래층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놀다가 아저씨!! 소리 들으면 야아, 삼촌이라고 해~ 하는데 애원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카들 보내고 우울하지도 않았고, 놀다가 아련하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뭐 더 쥐어주려고 오바질하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간이라는 약은 참 신기합니다.
다만, 풍선처럼 한 곳이 잠잠해지니 다른 곳이 뽈록해진 게 문제입니다. 요 몇 년간 마음 치료를 받으면서 술먹고 주정도 안 하고, 험한 꿈도 안 꿨습니다. 그러다 요 몇 달 약을 줄이려고 하다 보니, 멍청할 때는 신경 안 쓰던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꿈속에서 누구랑 싸우는지 옆에서 자던 아내가 날벼락을 맞고, 이번엔 남편들끼리 따로 2차 하다가 취해서 스무 살처럼 민폐를 끼쳤습니다.
아빠 못 된 아저씨의 우울이 버섯처럼 다른 모양으로 자라난 것인지, 그냥 이게 일상인데 너무 잠잠하게 살다 보니 적응이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약 없이도 잘 살려면 조심조심 해야겠지요.
간만에 친구집 와서 놀다가 주정뱅이 케어하느라 고생한 친구들 볼 낯이 없습니다. 애들 앞에선 안 취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좀 혼나도 될 것 같습니다. 삼촌 성공, 친구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