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울음을 참는 사람
실행
신고
2
라이킷
21
댓글
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Suno
Apr 29. 2024
한걸음만 앞으로
쿠크다스 같은 마음 다스리기!
"한걸음만 앞으로"
너무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있는 문구를 문방구 아크릴 코너에서 팔고 있다니...
어머, 이(거 파는) 사람들 꽤나 위트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살다 보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있지 않나?
옴짝달싹 걷지도 주저앉지도 못하고 있는 그런 잠시 멈춤의 때.
사면초가. 상황이 협소해진 사람들에게 너무나 위로가 되어줄 말이라고 생각되었고,
나와 딸은 유쾌한 마음으로 그 안내문구를 사 들고 왔다.
" 한걸음만 앞으로 "
망망대해 청춘의 한가운데에 떠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내 딸에게도 해주고 싶던 말이었고,
이 나이에도, 수시로 그 자리에 얼어붙는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그 멋진 경구를 딸의 방문에 붙여두고 뿌듯해하던 우리.
이 에피소드가 큰 웃음을 준 것은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남성분이라면 이미 눈치챘을 일.
- 여보, 있잖아~ 문방구에서 이런 문구를 다 파는 거 있지?
OO이도 이 말을 맘에 들어해서 사 왔지 뭐야.
경구를 본 남편의 대답에 우린 빵 터져버렸다.
- 이거? 남자화장실 소변기에 붙이는 문구네~ 한걸음만 앞으로.
알 턱이 있나... 우린 남자화장실 이용자가 아니니까. 하하
마음은 속수무책 수시로 쿠크다스처럼 부서진다.
나름 견실한 내용물임에도 불구하고 쿠크다스는 왜 얇디얇은 비닐봉지를 걸치고선
그렇게 쉽게 부서지느냐 말이다.
단단히 부여잡으려 부단히 애써온 나의 지난날들이 무색하게,
훅! 들어온 공격에 바사삭 부서지는 마음.
훅 들어온 공격,
그것은 진짜 공격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게 나이가 드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받는 나 사이의 인과관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상처로 받지 않았을 말들을 나는 굳이 상처로 가져와서 끙끙거리고 있다는 걸
아프지만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책의 무덤으로 상처를 끌고 가지 않되, 다음번 같은 상황에서는 상처받지 않고 튕겨낼 수 있게 된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겠다. 말 그대로 레벨 업.
나의 경우엔 레벨 업이 참말로 더디고 더뎠다.
한걸음 나아가는 경험도 늦되었었고,
나를 돌이켜보기 시작한 것도 한참 뒤늦었다.
나의 자아가 조금씩 자라고 있구나... 결혼 후에서야 그걸 느꼈으니까.
나의 자아가 뒤늦게 빼꼼 생겼으니, 그것에 철갑을 두르기엔 아무래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으리라.
그렇게까지 늦기 전에, 누군가에게서 그런 위로를, 괜찮다는 다독임을 받았더라면
나의 자아가 조금은 빨리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잠 못 드는 내 밤들의 오랜 동반자였다.
쿠크다스 같은 나의 자아여.
철갑까지는 못 두르더라도, 비닐을 한 겹 두 겹 겹겹이 두르다 보면
적어도 바사삭 부서지지는 않을 거야.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날을 경험하기.
그리고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엔
잠시 멈추기.
상처받은 날에, 적어도 도망치듯 뒤로 방향을 돌리지 않기.
그것의 쓰임과 출처가 어디인지 알아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말이 맘에 든다.
한걸음만 앞으로!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날엔 잠시 멈춰도 돼. ^^
keyword
마음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