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전하는 마음
이 힘듦이 나 혼자 겪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우리가 된다. '우리'는 힘이 난다.
-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연대'의 사전적 정의이다.
공감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공감받기만 해도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들이 저절로 해소되는 것만 봐도
공감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런데, 연대는 공감을 더 넘어서는 것, 온도로 치면 조금 더 뜨거운 것.
나는 연대를 뜨거운 공감이라 말하고 싶다.
첫 딸을 낳던 날,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딸과 이어졌구나 생각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일생일대의 생경하고도 커다란 경험이었지만, 아들과 딸 둘 중에서 딸을 낳은 것.
나는 어미가 되었고 내 아이는 나의 딸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 생긴 이 특별한 감정이 무엇일까?
아주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 딸이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여성으로서 내 딸과 연대한다는 것을.
(그래서 무언가 남편에게 가끔 미안해지던 마음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그는 남성으로서 아들과 연대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더라)
딸을 키우면서, 딸과의 연대를 느끼는 내 마음엔 우려와 기대가 혼재했다.
내가 겪은 시대를 너는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동시에 내가 겪은 이 마음을 네게 이해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
이런 내 마음에서 어쩌면 딸은 모순을 보았을까.
너의 시대는 우리를 초월하길 바라면서 너는 우리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
우리에겐 개딸이 두 마리 있다.
10년 전, 반려견 메리가 집에서 출산을 하고 암컷인 두부를 낳았다. 그때의 내 마음도 그와 비슷했다.
메리도 딸을 낳았네? 메리, 너도 엄마가 되었구나.
지극정성 젖을 물리고, 똥오줌을 핥고 자신을 뒤로하고는 새끼를 돌보는데 여념이 없는 메리를 볼 때에
내가 메리에게 느낀 감정도 분명 연대였다.
우린 둘 다 엄마가 되었다는 것. 내가 너를 뜨겁게 이해한다는 것.
메리에게 느끼는 마음이 이럴진대, 내 딸이 자식을 낳는다면... 그 감정은 얼마나 복잡하고 진하고 뭉클할까.
상상할 수 없었다.
몇 해 전, 스물 세살이 된 딸은 나에게 편지를 썼다.
딸은 스물여덟에 저를 낳고 엄마가 된 사람을 떠올렸고,
그녀가 엄마가 되었던 스물여덟이 자신과 그리 멀지 않은 날이었다 생각하니
처음 엄마가 된 그녀의 젊음이 짠했다고 했다.
엄마의 손 편지엔 언제나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쓰여 있었는데
어린 딸은 엄마가 왜 만날 미안하다 하는지 몰랐지만
이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했다.
그러니
더 이상 서로 미안해하지 말자고 했다.
나를 알 것 같다는 딸의 말이
위로인지 슬픔인지 몰라 나는 한동안 늑대처럼 목 놓아 울었다.
너를 낳아 품에 안던 순간에
실체처럼 생겨난 연대를 너도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네가 생각하는 연대가 부디 견디는 것의 연대가 아니길.
그러니 너는,
너의 세대는 우리를 모두 이해하지는 말아 주길.
우리에서 멈추지 않고 기대보다 훨씬 높고 넓길.
결국, 딸과 엄마의 연대는 태생적으로 모순이었다.
언젠가는 너도 나의 이 모순을 이해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