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고 Jan 05. 2024

여기가 아닌가 보오.

인스타 감성 사진에 속았던 적 있으신가요?

| 취미는 카페투어 |


카페투어가 취미다.

예쁜 곳을 발견하면 저장해 놓고 도장 깨기를 한다.

그런데, 인왕산에 위치한 이 카페는 주차장이 협소한 데다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아이와 함께 가기엔 접근성이 떨어져 저장하지도 않았던 곳이다.


| 나는 아이 엄마 |


게다가 나에겐 아직 온전한 사람구실을 못하는 미성숙한 어린이가 한 명 있다.

공간 전환도 힘들뿐더러 (집에서 밖으로, 밖에서 집으로 이동이 힘들어 한 곳에 꽂히면 그곳에서 줄곧 있길 선호한다.) 도보에 에너지를 소진하며 목적지 이동을 하기란 더욱 힘들다.

그래도 초등학생 딱지가 붙고 나서 조금 나아졌다고 믿고 있다.


아이들 방학을 맞아 마침 남편도 쉬는 날이라 오전에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 평일 오전이면 협소한 주차장도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설령 주차 자리가 없더라도 남편이 혼자 수고해 주면 될 것 같은,

차마 남편한테 말하지 못한 나만의 계획도 있었다.


| 배탈 난 아이 |


디데이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어린이는 초등학생이 되고 조금 나아진 거 같다는 엄마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며 갑자기 명치를 부여잡고 배가 아프다며 데굴거리기 시작했다.

이 증상은(증상으로 쓰고 진상이라 읽는다.) 어른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낫는 병이다.

우선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전설의 민간요법인 ‘배야. 배야. 똥배야’로 시작되는 노래부터 불러보았다.

오늘이 디데이인걸 눈치챈 걸까? 쉽사리 통하지 않는다.


소화제도 먹여보고, 배를 따듯하게 할 핫팩도 해주고, 마지막으로 응가를 해보자며 화장실까지 밀어 넣는 데 성공했지만, 자기는 응가 마려워서 배 아픈 게 아니라는 자가진단으로 결과물 보기를 실패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을 썼다.

‘너는 할머니랑 집에 있어. 우리는 나갔다 올게. ’라는 협박으로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 부지런한 사람들 |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부지런도 하셔라.

서울 시청 앞을 지나는데 이 인파는 무엇인가.

아침 댓바람부터 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카페에 도착했다.

이중주차된 차들을 보니 마음이 어지럽다.

오는 길에 아무리 찾아봐도 근거리에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던데, 차마 남편한테 말하지 못한 나의 계획을 급하게 읊조리며 아이들과 바삐 차에서 내렸다.

‘우린 먼저 카페 들어갈게. 남편! 알아서 주차해봐 봐’

예의범절로 무장한 남편은 2차선 도로에 잠시 깜빡이를 켜고 멈춰있는 것도 마음이 무척 쓰이기 때문에 우리를 하차시키고 무작정 go(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인스타 감성 사진에 속았나? |


카페에 입장했다.

그런데 여기.

무언가 낯설다.

사진과는 너무 다른 현실.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뒤편으로 돌아가보면 다른 장소가 나오나?

너무 혼란스럽다.

인스타 감성 사진에 완전히 속았나 보다.

황당하지 그지없는데

여전히 배아픔을 호소하는 어린이와

한편엔 배고픔을 호소하는 어린이가

동시에 내게 말을 건다.( 난 두아이의 엄마다.)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건 주문뿐.

배고픈 아이를 먼저 해결해 주고 분노의 검색질을 시작했다.


인왕산 초소책방의 전망

| 인왕산 초소책방 vs. 인왕산 숲속쉼터 |


나는 인왕산의 초소를 리모델링한 숲속쉼터의 환상적인 사진을 보며 당연히 그곳에서 커피를 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인왕산 카페를 검색했고

카페인 이곳. 인왕산 초소책방에 온 것이었다.


인왕산 초소에 대한 나의 얄팍한 지식과

인왕산이라는 같은 단어로 엮여 있는 이름

이 둘을 같은 장소로 오인 한 것이다.


그나마 두 곳의 위치가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인왕산 숲 속 쉼터는 10여분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배고픈 어린이는 주문으로 처리했으니 이제 배 아픈 어린이의 차례다. 평소 금지했던 유튜브 시청이라는 약을 처방해 배 아픔을 깨끗이 낫게 하였다.

인왕산 숲속쉼터


| 최종 목적지로 |


주차 후 본의 아니게 인왕산 둘레길 산책을 마치고 합류한 남편과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계단 오르기에 최적화된 ‘가위바위보 게임’도 했다가

(이때 꼭 져 줘서 어린이가 먼저 계단 오르게 하는 게 키 포인트) ‘솔방울 누가 더 멀리 던지나 ’ 내기도 하며 (이때 꼭 계단 위로 올려놓아야 주우러 올라갈 동력이 생김) 목적지에 도착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곳은 카페도 아니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내겐  산 위의 통유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건축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데, 관광의 목적으로 아이와 씨름을 하며 오를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정보를 급하게 받아들여 생긴 잘못이다.


게다가 실내는 도서관보다 더한 적막함에 난방기 돌아가는 소리만 울리는 곳이다.

어린이 동반 입장은 비추다.

음악이라도 틀어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인왕산 숲속쉼터의 내부


적막을 유지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가 아비와 함께 산에서 땅파기 놀이를 하는 동안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큰 아이와 이 공간을 잠시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래도 바깥 상황이 신경 쓰여 오래 있지 못했다.


힘들게 오른 곳에 음료와 음악이 있었다면

카페투어를 사랑하는 내게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하지만 평일 오전의 이곳은 독서와 명상을 하는 어른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으며,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 더 꼼꼼한 검색을 하는 나로 거듭나길 바란다.

또한 이 글이 널리 퍼져 나와 같은 어리석음으로

헛걸음하는 부모님이 없길 바란다.

그런데 정보를 급하게 받아들여 오류를 반복하는 우리가 과연 이 긴 글을 다 읽겠는가.


그래서 요약한다.


인왕산에는 초소가 많았다.

초소를 리모델링 곳도 곳이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재방문 하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