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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 Jan 03. 2024

재방문 하지 마세요.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세요.(하얏트 발리)

| 호텔 전문가 vs.  5성급 초짜 |


여행사 직원인 나는 꽤 오랫동안 발리 지역의 담당이었다.

무수히 많은 발리 호텔을 섭렵한 나는 그랜드 하얏트 발리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갖고 있었고, 남편과 결혼 후 첫 여행지로 발리를 선택했을 때, 이 호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을 것이다.

대다수의 싱글인 남자가 그러하듯 적당한 등급의 호텔에서 관광과 마사지만을 위주로 동남아 여행을 한 그는 소위 5성급 호텔을 처음 접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그랜드 하얏트 발리에서의 첫인상은 강렬했을 것이라고 본다.

차량 하차 후 기다란 회랑을 걸어가면서 너머로 보이는 연못과 바다와 하늘의 조화가 점점 크게 시야에 담기면 비로소 내가 이 무릉도원에 휴가 왔다는 느낌을 극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이 주는 설렘과 신혼부부만의 사랑이 충만한 여행이 주는 행복감이 있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발리를 두 번 더 방문했지만 남편의 기억 속에 가장 좋았던 호텔은 단연코 하얏트였다.


| 그랜드 하얏트 발리의 장단점 |


그랜드 하얏트 발리는 일단 부지가 넓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이곳의 포인트는 바로 조경이다. 하와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꽃인 플루메리아 나무가 수영장의 파라솔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촘촘히 식재되어 있다. 수영장곡선 설계되어 많은 투숙객들이 동시 이용하여도 수영장의 일부만 내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 나만의 프라이빗한 수영장이 되어준다.

연못도 많아서 물과 나무와 꽃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하는 호텔이다.

그리고 여행사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한국 사람은 밥이 맛없으면 여행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하얏트는 조식이 정말 맛있다.


물론 완벽한 조경을 만들어 내기까지 나무가 자랐을 나이만큼 이 호텔의 나이도 비례할 것이다. 때문에 객실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즐거운 기억이 가득한 이 호텔에서의 투숙 경험을 종종 추억했던 우리는 한 명의 딸과 한 마리의 아들을 낳고 다시 한번 그랜드 하얏트 발리를 예약했다.

(아직 ‘명’이라는 단위명사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에서 밝힐 것이다.)


| 다시 방문한 발리 |


이번 12일간의 발리여행 중 가장 마지막 일정의 4박을 하얏트에서 보냈다.

거의 12년 만에 방문한 하얏트의 로비는 그대로였다.

가믈란이라고 불리는 발리 전통 악기 실로폰 연주 소리가 향수를 자아냈다.

다만 체크인하는 동안 대기할 소파의 부재, 웰컴 드링크의 셀프서비스화는 고객의 기대치를 대폭 낮추게 하는 기운 빠지는 응대였다.

그래도 애써 설레는 마음을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투숙할 방의 방문을 열었다.

하필 1층으로 배정되었다. 노후된 방에 첨가된 눅눅한 기운에 실망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서로를 향해 레이저를 쏘아댔다.

결국 해가 잘 드는 방으로 바꿔 보기로 했다.

4층에 위치한 방으로 바꾸고 나니 한결 쾌적하여 기분이 나아졌다.


| 4인 가족 한방 체크인 가능 |


4인 가족이 되고 방문한 그랜드 하얏트 발리의 장점은 이것이다.

2 트윈베드를 붙여서 이용할 수 있고, 소파베드가 있다.

항상 호텔을 예약할 때 4인 한방 예약이 가능한지 우선순위로 보고 객실의 침대 타입을 검색한다. 너무 마음에 드는 호텔일지라도 위 조건에 맞지 않아 가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게다가 1층과 달리 4층 룸의 소파베드는 킹베드 사이즈라 초1 아들과 함께 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조식당 |


하얏트 호텔의 조식당은 클럽라운지 전용까지 모두 세 곳이다.

아무래도 메인 레스토랑이 음식 가짓수가 많지만 그만큼 사람들로 북적여서 우리는 한결 여유로운 클럽라운지 조식당을 더 선호하였다.

나는 동남아시아 호텔 조식의 맛 평가는 이 음식 하나만으로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쌀국수다.

쌀국수가 맛있으면 그 호텔 조식은 기대할만하다.

하얏트는 쌀국수가 맛있다.


| 수영 |


수영장에는 두 개의 워터슬라이드가 있다. 전혀 슬라이딩이 되지 않아 손으로 밀고 내려가야 하는 완만한 슬라이드 한 개. 그리고 아이들은 제법 재미있게 타지만 타는 사람의 요령에 따라 재미없을 수도 있는 슬라이드 하나가 있다.


하얏트 부지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오후엔 물이 빠지지만 오전엔 제법 파도타기 놀이를 할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이제는 어느 바닷가를 가던 빠지면 섭섭할 그네도 있어 우리 아이들은 조식 먹고 한번, 수영하다 한번, 저녁 먹고 한 번 방앗간처럼 들려 그네 타기를 즐겼다.


| 키즈클럽 |


키즈클럽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맞는다.

다만 간혹 유료 프로그램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유료 치고는 퀄리티가 아쉽기도 했고 무료 프로그램인 토끼 먹이 주기나 테이블 축구게임이 무척 즐거워 매일 키즈클럽을 찾았다.

레게식으로 머리를 땋아주는 헤어 브레이딩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었을 텐데, 이 프로그램 신설을 호텔 측에 적극 건의하고 싶다.

키즈클럽 내 테이블 축구게임


| 석식 BBQ와 전통공연 |


하얏트 발리의  주말에 진행하는 발리 전통공연인 “깨짝댄스”를 관람하며 저녁을 먹는 BBQ파티다.

나는 이 식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 일부러 주말을 껴서 하얏트 투숙을 하였다.

이 석식은 두 번 경험하여도 역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 BBQ를 양껏 먹을 수도 있고, 향신료 향이 덜 가미된 사테도 입맛에 맞았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아이들이 관람하기에 깨짝댄스 공연이 조금 무섭게 다가올 수 있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의 풍경은 이국적이었으며, 조명이며 식탁보의 색감이 유럽 어딘가에 와닿아 있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서 포근하고 좋았다.

다만 밤모기가 나에게 현실감을 주며 몽상에서 깨어나게 하니 꼭 모기 기피제를 준비하자.


| 만족도 |


나는 재 방문한 하얏트 발리가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12년 전, 밤 비행기의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바다 앞에 위치한 Bar에서 빈땅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던 기억이 있다.

그때 들렸던 파도소리, 바닷바람의 시원함을 아련하게 추억하고 있어 가장 기대했던 장소였다. 그런데 이번 방문 시 Bar운영이 잠시 중단 중이라 이용하지 못했다.

그래도 재방문한 하얏트 발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둘이었던 우리가 넷이 되어 왁자지껄하게 수영도 하고 그저 호텔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내가 좋아했던 공연을 아이들에게도 경험시켜줘서 뿌듯했다.

그러나 만약 하얏트 발리 예약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 호텔을 예약하지 않겠다.


| 재방문 No |


이번 하얏트 재방문으로 우리 부부가 나누었던 추억이 최근의 선명한 기억으로 덧대어지면서

그때의 풋풋했던 추억이 희미해졌다. 이제 우리는 12년 전의 추억 말고 넷이 함께한 기억을 나눌 것이다. 나는 갑자기 내 과거를 도난당한 느낌이 들어 너무 아쉽다.

과거 기억은 과장되거나 곱씹어 추억하면서 왜곡될 수도 있다.

과장하던 왜곡하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다면 그대로 두어야겠다.


옛 추억이 가득한 그곳.

절대 재방문하지 마시라.

추억은 추억으로 잘 보존해 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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