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고 Jan 09. 2024

발리 영업맨과 잘못된 만남

마사지는 마사지사에게 헤어는 미용사에게

| 발리 영업맨 |


호텔 앞 프라이빗 비치를 지나다니면 전혀 프라이빗 하지 않게 훅 들어오는 질문이 있다.

“마사~~~~ 지?”

바다를 오갈 때마다 이런 호객행위를 며칠 듣다 보니

급기야  '선베드에서는 마사지가 휴식이지'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오케~~~~ 이”를 외치게 되었다.

그러자 돌연 옆에 있는 딸아이를 가리키면서

“헤어 브레이딩?”이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한다.

1+1 영업에 돌입했다.

이미 열기로 한 지갑, 더 활짝 열어젖히라며 계속 속삭이고 있다.


| 발리 헤어 브레이딩 |

이미지 출처 pinterest

발리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있다.

그 이름도 생소한 ‘헤어 브레이딩’을 한 어린이들 이였다.

(윗 문장을 쓰고 나서 고백하건대, 미용에 관심 많은 딸을 가진 부모라서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기도 하다.)


‘헤어 브레이딩(Hair Braiding)’이란 일명 레게 머리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공들여 머리 땋기’ 정도 되겠다.

발리 헤어브레이딩은 흔히 본 레게 머리와는 달랐다.

레게 머리는 머리카락을 작게 쥐고 여러 가닥들로 땋아서 포인트를 주는데

영업맨이 훅 제시한 헤어브레이딩은 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디스코 머리처럼 굵게 땋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레게머리를 해본 적 있는 우리는 색다른 머리땋기를 해주겠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 충동구매 |


그런데 충동구매란 것이 그렇듯 가격흥정부터 난관이었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 합리적인 가격이 얼마일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영업맨은 한화로 7만 원을 불렀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7만 원으로 이 튀는 머리를?

흔들리는 동공 속에서 내 갈등을 눈치챈 건지

영업맨은 한발 물러서서 얼마를 원하는지 말해보란다.

해변에서는 와이파이도 안 터져 적정가 검색도 못하는데 얼결에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왔다.

가격흥정은 기싸움이라고 하니 정신을 차려본다.


나는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본 해외여행 시 가격 네고하는 방법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7만 원의 반 값인 3만 원을 불러봤다.(이때, 3만 5천 원의 5천 원도 반내림하는 센스를 뽐내본다.)

이미 입 밖으로 가격을 내뱉었지만,

'3만 원도 비싼 거 아닌가? 발리 물가가 엄청 싸던데, 저번에 한 레게머리는 한가닥에 얼마였던가.'라는

복합적인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

이젠 영업맨이 “오케~~~ 이”를 외치며 내 생각의 단절을 이끌어냈다.


가격흥정의 심리게임이 이토록 싱겁게 끝날 줄 알았으면 2만 원을 부를걸 하는 후회가 가득했지만,

영어가 짧기는 나나 영업하는 분이나 마찬가지라 긴 말 나누지 못하고 머리를 땋으러 간다.


| 디스코 머리 |


아! 근데 이 할머니(영업맨의 성별이 여자였음을 밝힌다.) 그냥 집에서 손녀 디스코머리 땋은 실력으로 영업하시는 것만 같다.

지난 레게머리 시술 시 꼼꼼하게 중간중간 고무줄로 모양을 잡아주던 미용사가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20여분의  머리땋기가  끝났다.

아… 결과물이 이게 뭔가. 탄식이 나온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내 마음도 머리카락에 찔리는 모양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할머니가 땋아주어도 이 정도는 하겠다는 생각에 닿으니, 이미 지불한 돈이 아까워 마음이 쓰렸다.


| 가스라이팅 |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가스라이팅을 시작해 본다.


첫째, 무엇보다도 이 충동구매의 목적은

아이의 즐거움을 돈으로 산 것에 불과하다.


둘째, 머리 땋기라는 게 영구 소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일주일 유지하고 풀어야 하는 단기 간의 즐거움이다.


셋째, 지금 본인의 앞모습만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다. 


넷째, 아이눈엔  보이지도 않는 뒷모습이다.


다섯째, 덜 정돈된 머리카락은

나만 모른 척하면 되는 일이니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 실패 |


이런 자기 최면 노력은 밤이 되기도 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호텔방에 돌아가 탈의하고 샤워하는 사이사이 머리카락은 더 이상 묶여있지 못하고 한가닥한가닥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엔 전부 풀리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환불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할머니의 이십 분간의 노동 비용은 얼마로 책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나를 발목 잡았다.

또 원활한 와이파이가 선사한 검색의 시간이 헤어브레이딩 잘 묶이는 위치등을 알려주었고,

그 할머니 실력을 이 랜선 지식을 통해 업그레이드 시켜보기로 했다.


| 재 시도 |


다음날 다시 해변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어제보다 머리카락을 더 힘껏 잡아당겨 디스코머리를 땋는다.

아이 눈이 양 끝으로 하염없이 당겨지고

급기야는 너무 아파 눈물이 난다.

무엇을 위하여 머리땋기를 하는지 인과관계에 의문이 들 무렵 끝이 났고.

제공한 랜선 지식은 할머니에게로 흡수되지 못하고 남김없이 빠져나갔다.


결국 두 번째 땋은 머리도 밤에 다 풀어지고 말았다.

동일한 기술자가 행사한 동일한 실력이기에 생긴 당연한 결과다.


앞서 그토록 염원했지만 물거품처럼 사라진 다섯 가지 자기 최면 때, 입이 방정일까 봐 미처 말하지 못했던,


단 한 가지 결론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이에게 머리카락 다 뽑힐 것 같은 경험을 돈을 주고 산 것인가.'


| 긍정적 결론 |


마지막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쥐어짜 다시 가스라이팅을 시도한다.


첫째. 우리에겐 두 번의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둘째, 이 경험을 통해 레게머리만 보면

우리끼리 추억할 강력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셋째. 딸에게 어른이 늘 올바른 결정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우쳐줬다.


넷째, 헤어는 꼭 전문샵에 가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위의 네 가지 이외에 생각나는 긍정적 결론이 있다면 저에게 댓글로 알려주세요.

집단지성의 힘으로 이 이야기를 행복하게 끝내보아요.

작가의 이전글 여기가 아닌가 보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