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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영업맨과 잘못된 만남

마사지는 마사지사에게 헤어는 미용사에게

by 고고

| 발리 영업맨 |


호텔 앞 프라이빗 비치를 지나다니면 전혀 프라이빗 하지 않게 훅 들어오는 질문이 있다.

“마사~~~~ 지?”

바다를 오갈 때마다 이런 호객행위를 며칠 듣다 보니

급기야 '선베드에서는 마사지가 휴식이지'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오케~~~~ 이”를 외치게 되었다.

그러자 돌연 옆에 있는 딸아이를 가리키면서

“헤어 브레이딩?”이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한다.

1+1 영업에 돌입했다.

이미 열기로 한 지갑, 더 활짝 열어젖히라며 계속 속삭이고 있다.


| 발리 헤어 브레이딩 |

이미지 출처 pinterest

발리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있다.

그 이름도 생소한 ‘헤어 브레이딩’을 한 어린이들 이였다.

(윗 문장을 쓰고 나서 고백하건데, 미용에 관심 많은 딸을 가진 부모라서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기도 하다.)


‘헤어 브레이딩(Hair Braiding)’이란 일명 레게 머리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공들여 머리 땋기’ 정도 되겠다.

그런데 발리 헤어브레이딩은 흔히 본 레게 머리와는 달랐다.

레게 머리는 머리카락을 작게 쥐고 여러 가닥들로 땋아서 포인트를 주는데

영업맨이 훅 제시한 헤어브레이딩은 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디스코 머리처럼 굵게 땋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레게머리를 해본 적 있는 우리는 색다른 머리땋기를 해주겠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 충동구매 |


그런데 충동구매란 것이 그렇듯 가격흥정부터 난관이었다.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 합리적인 가격이 얼마일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영업맨은 한화로 7만 원을 불렀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7만 원으로 이 튀는 머리를?

흔들리는 동공 속에서 내 갈등을 눈치챈 건지

영업맨은 한발 물러서서 얼마를 원하는지 말해보란다.

해변에서는 와이파이도 안 터져 적정가 검색도 못하는데 얼결에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왔다.

가격흥정은 기싸움이라고 하니 정신을 차려본다.


나는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본 해외여행 시 가격 네고하는 방법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7만 원의 반 값인 3만 원을 불러봤다.(이때, 3만 5천 원의 5천 원도 반내림하는 센스를 뽐내본다.)

이미 입 밖으로 가격을 내뱉었지만,

'3만 원도 비싼 거 아닌가? 발리 물가가 엄청 싸던데, 저번에 한 레게머리는 한가닥에 얼마였던가.'라는

복합적인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

이젠 영업맨이 “오케~~~ 이”를 외치며 내 생각의 단절을 이끌어냈다.


가격흥정의 심리게임이 이토록 싱겁게 끝날 줄 알았으면 2만 원을 부를걸 하는 후회가 가득했지만,

영어가 짧기는 나나 영업하는 분이나 마찬가지라 긴 말 나누지 못하고 머리를 땋으러 갔다.


| 디스코 머리 |


아! 근데 이 할머니(영업맨의 성별이 여자였음을 밝힌다.) 그냥 집에서 손녀 디스코머리 땋은 실력으로 영업하시는 것만 같다.

지난 레게머리 시술 시 꼼꼼하게 중간중간 고무줄로 모양을 잡아주던 미용사가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20여분의 머리땋기가 끝났다.

아… 결과물이 이게 뭔가. 탄식이 나온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내 마음도 머리카락에 찔리는 모양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할머니가 땋아주어도 이 정도는 하겠다는 생각에 닿으니, 이미 지불한 돈이 아까워 마음이 쓰렸다.


| 가스라이팅 |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가스라이팅을 시작해 본다.


첫째, 무엇보다도 이 충동구매의 목적은

아이의 즐거움을 돈으로 산 것에 불과하다.


둘째, 머리 땋기라는 게 영구 소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일주일 유지하고 풀어야 하는 단기 간의 즐거움이다.


셋째, 지금 본인의 앞모습만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다.


넷째, 아이눈엔 보이지도 않는 뒷모습이다.


다섯째, 덜 정돈된 머리카락은

나만 모른 척하면 되는 일이니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 실패 |


이런 자기 최면 노력은 밤이 되기도 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호텔방에 돌아가 탈의하고 샤워하는 사이사이 머리카락은 더 이상 묶여있지 못하고 한가닥한가닥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결국엔 전부 풀리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환불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할머니의 이십 분간의 노동 비용은 얼마로 책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나를 발목 잡았다.

하지만 원활한 와이파이가 선사한 검색의 시간이 헤어브레이딩이 잘 묶이는 위치등을 알려주었다. 이 랜선 지식을 통해 할머니 실력을 업그레이드 시켜보기로 했다.


| 재 시도 |


다음날 다시 해변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어제보다 머리카락을 더 힘껏 잡아당겨 디스코머리를 땋았다.

아이 눈이 양 끝으로 하염없이 당겨지고

급기야는 너무 아파 눈물이 났다.

무엇을 위하여 머리땋기를 하는지 인과관계에 의문이 들 무렵 머리 땋기가 끝이 났고.

제공한 랜선 지식은 할머니에게로 흡수되지 못하고 남김없이 빠져나갔다.


결국 두 번째 땋은 머리도 밤에 다 풀어지고 말았다.

동일한 기술자가 행사한 동일한 실력이기에 생긴 당연한 결과였다.


앞서 그토록 염원했지만 물거품처럼 사라진 다섯 가지 자기 최면 때, 입이 방정일까 봐 미처 말하지 못했던,


단 한 가지 결론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이에게 머리카락 다 뽑힐 것 같은 경험을 돈을 주고 산 것인가.'


| 긍정적 결론 |


마지막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쥐어짜 다시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다.


첫째. 우리에겐 두 번의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둘째, 이 경험을 통해 레게머리만 보면

우리끼리 추억할 강력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셋째. 딸에게 어른이 늘 올바른 결정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우쳐줬다.


넷째, 헤어는 꼭 전문샵에 가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위의 네 가지 이외에 생각나는 긍정적 결론이 있다면 저에게 댓글로 알려주세요.

집단지성의 힘으로 이 이야기를 행복하게 끝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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