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2020년 어느 이른 봄날 아침.
열차 예매 시간을 확인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대지는 움트는 생명들을 밀어내며 격려하듯 길을 열어 주고, 길가의 어린 느티나무는 봄과 사랑에 빠진 듯 새 순을 오므려 쥐고 있었다.
봄은 어느새 대지 위에 생명의 숨결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 겨울의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상행선 열차가 소리 없이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언제나 나에게 열차는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낭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이 조여 온다.
이제 열차는 더 이상 설렘이 아니라, 나를 고통의 현장으로 데려가는 차가운 운명선 같았다.
고속열차는 빠르게 나를 낯선 장소에 데려다 놓았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채혈실은 벌써 사람들로 붐볐다. 번호표를 뽑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혈관에 주삿바늘이 꽂히고 검붉은 피가 모아지고 있었다. 겉옷을 벗고 위 팔뚝까지 옷을 걷어 올렸다. 팔뚝에 고무밴드를 감자 푸르고 굵은 핏줄이 꿈틀거리며 살갗에서 부풀어 올랐다. 주사 바늘이 혈관을 뚫고 들어가자 피는 순식간에 작은 혈액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암병동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접수는 했지만 언제 진료실로 들어갈지는 알 수 없다. 가끔 의사와 면담이 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기실 의자는 이미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 있고 다른 빈 공간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모두 대기자 순서를 알려주는 화면을 주시했다. 나는 혈압과 몸무게를 재고 대기순번을 확인했다. 심장에 금이 간 듯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병원에만 들어오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서성였다.
마침내 이름이 호출되고 진료실 앞에 앉았다.
"가능하면 빨리 절제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온몸에 힘이 풀렸다.
'아! 또 내 몸속에 암이 자라고 있단 말인가'
대장암 수술을 한 지 이제 겨우 1년.
그 사이 암은 또 다른 장기로 이동해 자리를 잡고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듯 컴퓨터 화면을 주시했다. 컴퓨터 화면에는 지난주에 촬영한 복부컴퓨터단층촬영 결과가 떠 있었다.
화면에 비친 복부 단층사진을 마우스로 빙빙 돌리며 설명하는 의사의 말은, 회색과 검은 색상 속에 묻혀 아무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시간에 쫓기듯 말을 이어갔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좋지만, 10년 전에 간암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것도 고려해 보십시오."
"우선 외과에 진료할 수 있도록 해 두겠습니다. 외과 의사를 한 번 만나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의 말은 무미건조했다.
순간, 나는 그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었다.
또 한 번 칼을 대느니, 차라리 이대로 끝내고 싶었다.
그동안 두 번의 암 수술을 거치면서 나는 자신에게 말을 했었다. '더 이상 나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은 하지 않겠다. 암이 다시 찾아와 죽음이 찾아온다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리라'
수술적 치료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괜한 말을 꺼냈다가 난처해하는 의사의 얼굴이 떠 올랐다.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을 나서기 전에 의무기록지와 영상 자료만 챙겼다.
‘이제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대장암 수술 후 이제 겨우 몸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도 일상의 삶 속에서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또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할 수는 없었다. 10년 전 아내는 명예퇴직을 했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한 일이었다. 간암 절제 수술을 한 남편을 위한 선택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비바람이 치고 지나간 들판의 풀잎처럼 가슴도 숨죽여 쓰러졌다.
세상이 나를 밀어낸 것 같았다.
서울역 대합실로 들어가는 계단에 잠시 앉았다.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차피 알아야 될 일이라면 전화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아! 나,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두 번의 암 수술을 간병하고 치료 과정을 지켜본 아내는 직감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내는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아니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순응한 듯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그래요. 당신 마음 가는 대로 해요.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벌써 오래전부터 퇴직은 고려하고 있었다. 다만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버텨 보려고 했었다. 이젠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 몸이 보내고 있었다. 전화를 하는 사이에 목이 메워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늘을 보며 눈을 깜빡였지만 뜨거움으로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행여 약해지는 내 모습이 들킬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벌써 기차는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암이라고 하는 놈은 끈질겼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내어 잘라내면 잔존 세력은 몰래 숨어서 때를 기다렸다. 마치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부엉이나 침투용 잠수정처럼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상대의 약점이 발견되면 즉시 그곳에 집을 지었다.
문제는 뇌세포와 심근세포를 제외한 모든 정상 세포는 매 순간 사멸과 재생을 반복하며 적절한 개체 수를 유지하지만 암세포는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무한히 증식하여 신체의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뼛속까지도 파고든다. 그것은 내 몸을 집 삼아, 천천히 나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불청객이었다.
현대 의학도 암을 완벽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암과 처음 만났을 때는 공포였고,
다음에는 삶을 포기하게 하기도 하고, 마침내 주도권을 가지고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깊이 잠들 것처럼 눈을 감고 몸을 의자에 깊숙이 묻었지만 잠은 이룰 수 없었다. 감았던 눈을 떴다. 김천구미역에 도착한다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객실을 빠져나와 출입문 창 앞에 섰다. 낯익은 건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수없이 오고 갔던 익숙한 길과 일터였던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이 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서둘러 역사驛舍를 빠져나왔다.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로 나서자 갑자기 바람이 서늘해졌다. 옷깃을 세웠다. 길을 걸었다. 이제 정말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10년 전 간에 발견된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도 정말 이제 죽을 수도 있구나. 설사 수술이 잘 된다고 해도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었다. 죽음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었다. 그동안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왔었다. 그러나 암은 내게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유언장을 쓰기도 했다. 유언장은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쓴 것이 아니었다. 수술장에 들어갈 때는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몸이 회복된 후 어떤 '마음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쓰게 되었다. 유언장의 내용이라는 것이 몇 문장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가 전부였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쓰다만 종이장에 뚝뚝 떨어졌다. 가늘게 몸이 떨리고 후회와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순간 캄캄한 동굴에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몸은 두려움에 떨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역 앞에서 무작정 길을 걸었다. 길 잃은 작은 새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과녁 없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한 없이 헤맸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은 구름 위에 구름이 겹쳐 세상은 더욱 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구름 사이로 꺼질 듯 희미한 별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달빛도 가끔 외로워서 운다고 누가 말했던가?
흐느끼는 달빛을 구름이 감싸 안았다.
어둠만이 내 흔들리는 마음을 품어주었다. 그나마 내 마음을 숨겨주는 유일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