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선고

by 김호진

회상



바이러스와 함께 걷는 길

'간 수치가 높습니다. 간염 증상이 의심됩니다.'

교직에 들어온 후, 2년에 한 번씩 받는 공무원 건강검진.
서른 살이 되던 해의 결과지엔 처음 보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정밀 검사를 위해 도립병원에 들렀고,
며칠 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인지 몰랐다.

‘간암이나 간경화 발생 확률이 일반인보다 수십 배 높다’는 경고만 받았다.


단지 의사로부터 들은 것은 '바이러스를 없앨 수 있는 의학적 기술과 약은 존재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결국에는 간경화나 간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일반인 보다 수십 배 높다는 경고만 받았다.

몸에 나타나는증상은 없었다. 현대의학과 과학으로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것에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나는 곧 그 사실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내와 어머니는 민간요법을 찾아 손수 텃밭에서 신선초, 돌나물, 케일을 길렀다.

녹즙은 쓴맛이 났지만, 그 정성에 처음엔 꾸준히 마셨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이내 흐지부지 끝이 났다.
나는, 내 몸에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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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파괴하는 삶

40대 후반.
나는 암이 내 몸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20년 동안 잘 살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나는 내 몸을 망가뜨리며 살아왔다.

밤새 술을 마시고, 피곤해도 무리했다.
“내 몸은 알아서 회복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간을 혹사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한 시절이었다.
해독과 회복을 맡은 간을 가장 괴롭히는 생활.
그 결과, 면역이 무너지고 세포는 변형되었다.
암은 그렇게 조용히, 경고 없이 자라기 시작했다.



암이 내 몸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내 나이가 40대 후반이었다. 20년을 건강하게 잘 살았다. 다만 독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밤새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겼다. 직장에서도 무척이나 열심히 살았다. 내 몸은 내 것이니까 함부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 몸은 알아서 회복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간을 혹사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한 시절이었다. 해독과 회복을 맡은 간을 가장 괴롭히는 생활이었다.
그 결과, 간은 결국 면역력이 약해져 염증이 쌓이고 어려운 환경이 되자 세포들이 변형되어 암세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암은 그렇게 조용히, 경고 없이 내 몸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날의 진단

2010년 4월 어느 토요일 아침.

밤늦게 마신 술의 무게가 무거웠다. 나는 또 한 번의 반성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내는 나를 위해 병원 검진을 자주 예약했다.

그럴 때마다 '바쁘다' '현재 몸에 아무 문제없다'라고 하면서 매번 무시했다. 아내는 토요일로 검진일을 잡아두기도 했지만 금요일은 주말이라 마음 놓고 술을 더 마셨다. 토요일 일요일은 거의 집에서 누워 있었다.
오늘은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펌을 한 젊은 의사는 무척 친절했다. 면담을 마치고, 곧바로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어두운 방, 차가운 젤.

초음파 검사기에 비친 화면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검사 후 간호사의 안내로 진료실에 다시 들어섰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사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전부였다.

“…간 CT를 찍어 봅시다.”

순간, 나는 알았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암, 드러나다

구미시에 있는 영상 전문 병원에서 CT를 촬영전용 가운을 입었다. 하얀 동굴 같은 거대한 기계에 몸을 눕히자 잠시 후 조영제가 혈관으로 빠르게 퍼져 들어왔다. 몸이 화끈거리고 구토증세로 온몸이 덜썩거렸다. 겨우 촬영을 끝내고 하얀 동굴에 빠져나왔다. 결과는 빠르게 영상판독 전문의사에게 전달되었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모니터 속, 간 속에 달걀만 한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실감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암이래. 수술해야 한대.”

아내는 침착하게 말했다.

“수술하면 괜찮을 거야. 병원부터 알아보자.”


공존이라는 선택

내 나이 48세.

3개월 병가를 내고 절제 수술을 받았다.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에 나는 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절제 수술 후 고통은 거리 길지 않았다.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자. 복부에 길게 난 수술 부위도 빠르게 아물어 갔다.


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를 인간의 육체에서 없앨 수 있는 의학적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제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나의 입장도 달라졌다. 바이러스도 생존을 위해 인간인 숙주에 기생하고 있고, 숙주의 몸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바이러스와 나는 생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전쟁보다는 공존을 선택했다. 대신에 내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바이러스와 평화로운 공존으로 상생의 길을 가고자했다.


자연 앞에서 흐른 눈물

수술 후 10일이 지나 실밥을 뽑아 달라고 했다. 조기 퇴원 신청을 했다.

아내는 퇴원하면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황악산 아래에 있는 '자연의 집'이라는 자연치유 센터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매일 자연치유 건강 밥상을 받았다. 치유센터 인근 맑은 계곡으로 산책길이 있어 더욱 빠르게 몸은 회복되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육체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도 변형을 거듭한다. 나는 몇 개월 사이에 생활습관의 변화와 함께 감사함으로 가득한 열린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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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내와 함께 산책하던 숲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복대를 한 배를 감싸 안고 느릿느릿 걷다가 잠시 쉬어 가려고 발길을 멈추고 문뜩 멀리 푸른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어제 보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하늘은 맑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아름다운 새소리만 세상에 존재하는 듯 고요했다. 산꼭대기에는 양 떼처럼 하얀 구름들이 뭉실 뭉실 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눈물이 뺨 위로 흘렀다.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모든 것이 감사함이었다. 하얀 구름도 계곡의 바위도 이름 모를 새들도 모두가 감사할 뿐이었다. 그저 자연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여기 서 있는 몸의 존재 자체가 고마웠다.


그날 밤 나는 나눔과 베풂의 삶의 길을 가는 것이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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