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서서
프롤로그
수술장 가는 길
이동식 침대에 덩그러이 누워있는 내 모습은 평온했다. 아니 평온해 보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죽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신의 머리만 사막의 모래에 박고는, 이제는 죽을 위험 같은 것은 사라졌다는 듯이 숨죽여 있는 타조처럼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려놓고 싶었다.
살아서 병실로 간다 해도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유혹
인간이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굴복하게 되면 죽을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것은 삶의 마지막, 죽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삶의 끝자락.
어쩌면 죽음은 고통의 종식을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닐까?
처음 수술장이라는 곳에 들어갔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 빨리 회복하여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희망을 가졌었다. 두 번째로 수술장에 들어갈 때에도 죽음의 유혹보다는 절망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고난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더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의사가 암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더 이상 재발이나 전이가 없는 몸을 만들어주는 망상으로 마음이 어지럽기만 하다.
자연에서 얻은 기적
두 번째 암을 이겨내고 나는 더욱 엄격한 편식과 운동에 매달렸다. 자연에서 나오는 좋은 식품을 먹고 몸을 강하게 단련한다면 모든 병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체의 면역체계를 살펴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 몸에 침입하는 병원체와 세포의 변형으로 생긴 암세포를 공격하는 강력한 면역 부대를 만들 수 있는 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가끔 면역세포의 화력을 오직 암세포에만 집중적으로 퍼부을 수 있는 약품이 개발된다면 얼만 좋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그것은 살상면역 세포라고 불리는 T세포가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삼아 죽일 수 있도록 보다 진화한 면역세포가 되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암의 줄기세포는 섣불리 물러서지 않았다. 암은 나름 진화하고 있었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치 부엉이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듯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상대가 방심하자 마침내 암은 다시 자리를 잡았고 몸집을 키웠다.
세 번의 암 수술과 치료는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나에게는 물 위를 걷는 것보다 침대에서 일어나 혼자 걸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수술 부위를 예리한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것도, 병원 밥 대신에 가정식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모든 일상이 기적이 되었다. 또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숨 쉬고 있는 것이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늘 좋은 일만 일어나면 좋겠지만 신은 공평하게도 고통과 슬픔을 주기도 하고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기쁨도 고통도 지나고 나면 나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진정한 나를 찾게 해 주었으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눈과 깊이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은 고요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매일 매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풀 한 포기의 생명력, 바람 소리에 담긴 평온함, 햇살의 따스함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고통과 아픔은 결국 기쁨을 위한 신의 선물이었다. 암은 나에게 고통이 행복의 씨앗임을 깨닫게 해준, 진정한 축복이 되었다.
이 글이 당신에게도 삶의 고난 속에서 희망을 찾고, 일상 속 작은 기적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