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비가 줄줄 내리고 있다. 아침을 준비하고 잠시 마당에서 우산을 쓰고 서성거렸다.
지난가을 전지를 한 소나무는 여름을 지나며 잎이 무성해져 있었다. 계곡에는 제법이 물소리를 내며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새끼 고라니 세 마리가 풀을 뜯으며 거닐던 계곡 건너 작은 숲은 조용하다. 여름이 되고 숲이 우거지면서 고라니는 자취를 감추었다. 매일 한 두 번 만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어린 새끼였기에 걱정이 된다.
아침을 먹고 책상에 앉았지만 마음은 소란하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차를 타고 무작정 나섰다. 1시간쯤 달려서 도착한 곳은 물한리 계곡이었다. 비가 오고 평일이라 인적이 없었다. 조그마한 절을 지나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 위에 서서 한참을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바위를 돌고 부딪히며 계곡물은 쏜살같이 아래로 쏟아져 내려갔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경상북도 삼도봉과 충청도 민주지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두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어디를 선택하던 비가 내리는 산길은 너무나 아름답고 계곡의 물소리는 청량했다. 원시림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뿐이었다.
잠시나마 모든 생각이 멈추고 이 순간에 머물 수 있었다. 숲과 나무는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하고 있는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뽐내려 하고 과시하며 우월해 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혹시 내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 하면서 말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서 존경받으려 한다.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이 특화되어 있는 동물이 인간이 아닐까?
물한리 계곡은 자연이 준 선물이라면 우리가 자연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숲과 계곡을 아끼고 보존하는 일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연속에 있으면서 변형된 '나의 맑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한리 계곡(삼도봉 등산로 입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