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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17. 2023

네눈박이 진돗개 대박이

대박이와 동행



시골 마을에 큰 기와집을 짓고 사는 지인의 집에서 며칠씩 머물다 오곤 하던 때였다. 그곳에서 가끔씩 가는 암자가 있었다. 암자로 가는 길은 산책길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가는 날은 암자까지 갔다. 가는 길은 맑은 계곡물을 따라 있었기 때문에 산속 풍경과 계곡의 바위와 맑은 물을 보면서 가는 멋진 길이었다. 


그날은 '대박이'라 불리는 진돗개와 함께 가게 되었다. 몸은 검고 눈가에 황색 털이 있어 네눈박이라 불리는 진돗개였다. 

사실은 내가 대박이에게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같이 놀거나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냥 영혼이 자유로운 개이려니 하고 무심하게 보곤 했던 개였다. 


암자로 가는 길은 늘 혼자 갔던 길인데 오늘은 녀석이 내가 등산화 끈을 묶는 것을 지켜보더니 먼저 길을 나섰다. 앞장서 걸어가다가 우리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잠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서 있다가 가까워지면 꼬리를 높이 들고는 걸어갔다. 대박이는 나를 보호하면서 길을 안내하는 듯했다.




대박이의 주인인 지인의 말로는 최근에 대박이가 가출하였다가 2년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멀리 고개너머 마을에 애인 생겼는데 처음에는 가끔씩 외출하듯이 다녀오더니 점점 기간이 멀어져 나중에는 집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전에는 지금 가는 암자의 흰털을 가진 큰 개와 사귀었다고 한다. 암자의 개는 한 쌍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도 대박이와 사랑놀이를 하였다고 했다. 그 먼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면 놀았다는 것이다. 

혹시 오늘 자기 옛 애인을 만나기 위해 나와 동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지만 대박이와 같이 가니 보호자가 생긴 기분이 들어 나쁘진 않았다. 


비탈진 오르막길을 3킬로미터 정도 올라 산 모퉁이를 돌아서자 높다란 곳에 암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암자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혹시 암자의 수캐가 대박이가 온 것을 안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구에 도달도 하기 전에 사단은 나 버렸다. 하얀 털을 휘날리며 쏜살같이 커다란 개가 눈을 치켜뜨고는 달려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내가 개입하거나 제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납게 달려오는 큰 개를 내가 무슨 수로 제제하겠는가. 나도 겁이 덜컥 나버렸는데.


하지만 대박이는 무심하게 서 있었다. 흰 개는 자기 아내를 차지하려는 놈을 혼내 주려는 듯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으며 위협을 가했다. 나는 혹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가슴 조이며 서 있었다. 그러나 대박이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지 상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대박이 쪽으로 몸을 돌리면 살살 뒤걸음 쳐 

"대박아 우리 내려가자"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대박이는 알았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앞장서 산을 내려가지 시작했다. 암자의 큰 개는 거리를 두고 따라오며 사납게 짖더니 산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내 조용해졌다. 


이제야 대박이가 인근에 왕이라는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놈은 자기 집에서 큰 소리를 쳤지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대박이에게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다. 그 개는 대박이에게 달려들지 못했고 위협적으로 짖었지만 대박이는 무심했다. 어린애가 소리치는 것을 지켜보듯 전혀 겁을 먹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 정말 대단한 놈이다. 하산하면서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나를 인도하는 대박이가 자랑스러웠다. 내공의 깊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만은 나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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