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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28. 2023

다시 수술장

103 병동

물도 먹지 못한 상태가 10일간 계속되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서 화장실로 가야 했다. 나는 약물중독이라고 판단했지만 의사는 생각이 달랐다. 구역질을 멈추게 하고 이뇨작용이 더 잘되는 더 좋은 약을 찾아서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사실은 처방한 약을 먹지 않은지 1주일째다. 물도 먹지 못하는데 약은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조금만 들어가도 바로 토가 나왔다. 간호사는 식사 전과 후에 먹을 약을 제 시간에 늘 가져다 주었지만,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병실에서 죽는니 집으로 가서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퇴원을 부탁했으나, 오히려 검사를 더 자주 할 뿐 퇴원해도 좋다는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 몸무게는 하루에 1킬로씩 빠져나갔다. 


병원 현관에 가면 언제라도 택시를 타면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기다렸다. 도망칠 수는 없었다. 레지던트 전문의를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내일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가방을 싸고 옷을 갈아입었다. 입원할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기운이 나지 않았다.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무작정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요금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기차를 타러 갈 힘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금강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부위를 벌려 본 의사는 수술한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속근육까지 열어 보아야 하는데. 위험하다는 것이다. 혹시 모를 책임문제도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거저를 여러 겹 하고 반창고를 붙였다. 


복대를 감고 기차를 탔다. 아내가 따라가려고 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혼자 가겠다고 했다. 곧장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하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다. 1시간쯤 대기하다가 이름을 불러 가니 응급실 담당 의사가 문진을 했다. 잠시 침대에서 기다리면 담당전공의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한참을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당직전공의가 나타났다. 부위를 보더니 바로 꿰매 주겠다고 했다. 


마취하지 않고 바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많이 아픈가요. 많이 아프겠죠"

"이런 경우 대부분 마취 없이 그냥 합니다." 

여전공의는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듯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4 바늘 꿰매니까 여덟 번만 참으면 된다고 했다. 꿰매는 작업은 금방 끝났다. 



다음날 아침 복대를 풀고 수술부위 붕대를 갈려고 뜯었다. 여전히 거저가 흠뻑 젖어 있었다. 침대에 눕히고 아내가 부위를 살폈다. 깨끗하게 닦아내고 소독을 하고  다시 거저를 대었다. 다음날도 여전히 복수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지만 마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기차에 올랐다. 응급실 침대로 온 의사는 지난주 그 전공의였다. 부위를 살펴보더니 물이 마르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꿰맬 곳은 다 꿰맸으니 시간이 지나면 마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이라 담당 의사는 없을 것이고, 잠시 후 선배로 보이는 남자 전공의가 왔다. 간단한 수술도 할 수 있는 옆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누웠다. 속근육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좀 더 벌려서 열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도 좋다고 했다. 한참을 보더니 속근육이 터져 있다고 했다. 여기서 꿰맬 수는 있으나 안전하게 수술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중에 한 분이 수술장만 비워두면 집에서 올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술장이 마련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수술장으로 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담당의사가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덮었기 때문에 볼 수는 없었다. 국부마취를 하고 바로 수술을 시작했다. 배가 쭉 당겨오는 느낌이 살가죽이 터지는 것은 아닌지 할 만큼 세게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수술은 금방 끝나고 단단히 했다고 하고는 가버렸다. 나머지 바깥부위의 작업은 다른 분이 하는 것 같았다. 부위에 거저와 반창고로 고정을 하고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수서역으로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수술할 일은 없겠지.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다. 복대를 감싸 안고 조심조심 걸었다. 

혹시 또 터지는 일이 없도록~~.


수술부위가 터진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집으로 온 나는 처음에는 밥삶은 물만 먹었다. 조금씩 회복되면서 산책도 매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내가 마당에 디딤석을 깐다고 낑낑대는 것을 보고 곡괭이를 든 것이 화근이었다. 

6개월은 복대를 하고 조심 하라고 했던 의사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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