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미소
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어 현수야! 추석은 잘 쉬었나?'
'그래 너도 추석 잘 쉬었고.. 오늘 영포네 포도 작업한다고 하는데 가보자'
'아 쥬얼머스켓 따나 보네. 오전에 시내 볼일이 있어. 좀 늦게 갈게'
현수는 초등학교 친구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살게 되면서 고향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쌀농사와 샤인머스켓과 복숭아 농사도 하고 있다. 지난봄에는 모내기 체험을 한다고 반나절 따라다녔는데 다음날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현수가 이양기를 몰면서 모를 심을 때 나는 모판을 실어주는 보조역할이었다. 농사일이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해 보고 싶어서 자청한 일이었다.
영포네 포도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작업이 끝났는지 조용했다. 비닐하우스 안을 살펴보았다. 가장자리 포도나무는 포도송이가 달려있지 않았다. 가운데 서너 줄만 포도송이가 가지런히 매달려 있다. 이미 포도 따는 작업은 마치고 집으로 이동해 비닐포장을 하고 박스에 담는 작업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차를 돌려 영포네 집으로 갔다. 영포네 집은 마을회관 옆에 있다. 마당과 대문옆에는 이미 트럭 2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차를 후진하여 마을회관 마당에 주차했다.
마당을 지나 작업장으로 갔다. 벌써 박스 작업까지 마치고 현수는 소주 한 병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트럭을 작업장으로 밀어 넣고 박스를 실었다. 농협공판장으로 이동하는데 비를 맞지 않도록 비닐을 덮었다.
쥬얼머스켓은 샤인머스켓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포도다. 신품종으로 개발된 포도라고 한다. 익으면 노란색이 되고 아삭하고 식감이 좋은 포도이다. 샤인보다 껍질이 얇고 과즙이 풍부하여 인기가 좋은 것 같은데 그렇게 판매가 좋은 것은 아니다.
영포는 포도 수확일이 늦어지고 높은 가격을 받기가 힘들다고 차즘 정리를 하고 자옥이라는 보라색 거봉으로 교체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올 연말부터 작업을 시작할 것 같다.
포도 박스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집을 나서고 나머지 사람들도 차에 올랐다. 영포는 도와준 사람들에게 점심을 함께 먹자며 근처 식당을 알려주었다.
한 알 한 알 정성을 다해 기른 포도가 오늘 평가를 받는 날이다. 농부에게 평가의 결과는 가격이다. 영포의 얼굴은 기대와 근심이 함께 보였다. 애써 미소 짓지만 왠지 몸은 무거워 보였다.
트럭들 뒤를 따르다가 나는 집으로 가는 도로로 차를 돌려 유년기 친구들을 생생하게 떠올려 주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