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편지 1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다. 큰아들은 어린이집에서 키가 가장 큰 아이다. 그 나이가 4세인데, 연재를 하려고 하니 가장 먼저 든 고민이 호칭 정하기였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그냥 실명으로 ‘ㅇㅇ아’라고 호칭을 쓰는 게 맞나 싶었다. 실명을 부르자니 좀 더 귀여운 애칭이 좋을 것 같고, 나중에 아들이 봤을 때 오글거릴 거 같아서 마냥 귀여운 애칭으로 쓰기도 좀 그렇고.
하기야 백발 노인도 중년의 아들에게 “차 조심해라”라고 한다던데, 아빠 입장에서는 아들이 나이를 먹든 말든 영원히 어린아이일 테지. 모든 것을 감안하여 애칭은 ‘찹쌀이’로 했다. 한껏 힙업 된 궁둥이가 찹쌀떡처럼 탄력 있어서 붙인 별명이다.
흔히 정신분석학에서는 5세 이전의 경험은 기억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다시 말해 아들의 그 어린 시절 부분은 부모의 기억에 의존해야 비로소 세상에 남게 되는 것이다. 4세 아들을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자식과의 일상을 기록하려고 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아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기억에 없는 어린 시절을 간직한다는 건 본인 인생에 굉장히 큰 자산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아들의 1~5세 부분은 아빠인 내 기억에 의존해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건 참으로 희귀하다. 서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갑자기 맺어진 인연이다. 인간이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세상에 태어날 확률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을까? 흔히 로또 맞을 확률이 0.000012%로 벼락 맞을 확률보다 13배 이상 낮다고 하는데, 그에 비할 바도 아니다. 어찌 됐건 우리가 부자지간이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인연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들 키우는 데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첫자식이었기에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모르고 아이를 키우는 중이다. 그러니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컸고, 신비함도 있었다.
이쯤에서 아들이 어른이 되면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나 하려 한다. 지난여름, 동네에 수족구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어린이집을 일주일간 쉬었다. 고열이 있어 고생했지만 다행히 수족구는 심하게 앓지 않고 넘어갔다. 찹쌀이는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했지만 이틀 만에 고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족구를 이겨낸지 이제 이틀 지났을 뿐인데···. 찜찜했지만 감기 정도로 여겼다. 소아과에서도 눈, 코, 귀, 숨소리 모든 게 정상인 데다 코로나19도 음성이니 별 문제 아닐 거라 했다.
문제는 그날 밤에 일어났다. 고열이 사그라들어 좋아하고 있는데 찹쌀이가 일어서질 못하겠다고 말했다. 울진 않았지만 다리가 아프다며 저녁 내내 누워있었다. ‘엄살이려나?’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라고 여겼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찹쌀이는 여전히 다리가 아파 서질 못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급히 연차를 내고는 정형외과로 향했다. ‘소아마비’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섬뜩했다. 이내 X-레이 촬영 방에 들어가 울고불고 하는 녀석을 붙잡았다. 어른이기에 냉정하려고 애썼지만, 온 힘을 다해 아빠 몸에 엉겨 붙는 아들의 몸뚱이가 그날따라 왜 이리 작게 느껴지던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X-레이 판독을 기다리는 1시간, 어른도 아이도 지친 건 마찬가지였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의사 입모양에 집중했다. 그는 “골반뼈가 괴사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괴사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네!” 돌아온 의사의 말은 흔들림없이 분명해서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찹쌀이가 동요할까 봐 태연한 척했다. 녀석이 괴사라는 말의 뜻을 모른다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의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어로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LCP(Legg-Calve-Perthes)라는 병입니다. 뼈가 괴사 되는 병이지요. 원인은 여러 가지이나 혈액이 뼈에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게 대체적인 이유입니다. 열이 나기 이전부터 진행되어왔던 것으로 보이며,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소견서를 써드리지요.”
뭐라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진료실을 나오면서 ‘괴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찾아봤다. 내가 아는 그 단어가 맞나? 둘째를 임신 중인 와이프에게는 뭐라 말해야 하나? 단순한 X-레이 촬영에도 기겁하던 찹쌀이가 대학병원의 정밀검사를 견뎌낼 수 있을까? 아빠인 나는 이 모든 난관을 잘 헤쳐갈 수 있을까?
멘털부터 붙잡아야 했다. 슬퍼할 시간조차 없는 급박한 상황이란 걸 인지하려 노력했다. 그때마다 ‘소아마비’라는 단어는 왜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내 찹쌀이가 안쓰러웠다. 누워서 사지를 흔들며 방긋방긋 웃던 녀석, 그 모습을 볼 때면 하루의 고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었는데···. 순간, 감정이 복받치려는 걸 겨우 참았다. 하지만 이미 찹쌀이는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아빠는 “괜찮다, 괜찮다”라고 달랬지만, 녀석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다. 아빠가 흔들린다는 걸. 큰일이 생겼다는 걸.
*글이 너무 길어져 다음에 계속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