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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Sep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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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쓰는 편지 2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다마는 나는 그런 감상을 다 떠나서 어린 자식이 아플 땐 부모가 내리는 순간의 선택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정형외과를 나와 첫 번째 기로에 섰다. 검사와 진료를 합해 총 2시간을 병원에서 울었으니 일단 집에 가서 쉴까? 어차피 병이 진행되어 왔다면 오늘 가나 내일 가나 매한가지 아닌가? 그래도 심각한 병이라는데, 쉬는 게 대수인가? 힘들더라도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하는 거 아냐? 


냉정히 판단했을 때 바로 응급실에 가는 게 맞아 보였다. 하지만 저 작은 녀석이 또다시 수시간을 병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위해 보내야 한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었다. 이럴 땐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냉정하더라도 진짜 중요한 걸 놓치지 않는 것이 어른다운 거라고 여겼다.


우는 아이를 차에 태워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캐러멜, 사탕, 젤리 할 것 없이 아이가 좋아하는 걸 줘가면서 울음을 달랬다. 그치만 찹쌀이를 호명하는 간호사의 음성에 아이는 또다시 울고 만다.



아빠도 가슴이 찢어지지만 우린 할 것을 해야 한단다



피를 뽑고, X-레이를 다시 찍고, 초음파 검사까지 정밀검사를 위한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겁에 질려 울다가 녹초가 된 아이를 보니 대견한 마음이 컸다. 찹쌀이의 울음 끝은 길어질 대로 길어져 흐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픈 검사는 끝났어, 잘했어” 아빠의 위로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아들 마음에 안정을 줄 방법을 찾는 데 급급한 초보 아빠는 유튜브를 내밀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해 멘붕에 빠져있었다. 그때 엄마가 등장했다. 소식을 듣고는 회사를 박차고 달려온 슈퍼 히어로. 엄마를 본 찹쌀이는 또다시 대성통곡했지만 얼마 있다가 울음을 그쳤다.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엄마는 여러모로 대단하다. ‘괴사’라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아이 앞에서는 한 없이 태연하다. 이래저래 흔들리던 아빠와 딴판이다. 별거 아니라는 듯한 엄마의 태도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줬다. 



오면서 많이 울어서 눈물이 안 났어



사실 엄마는 많이 울었다. 응급실 도착 직전까지 감정이 격하게 일어났지만 아이를 보는 순간 오히려 태연하게 반응했단다. 참으로 대단한 존재 아닌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스킬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만큼 큰 거겠지.(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후 우리 세 식구는 평화롭게 결과를 기다렸다. 찹쌀이는 웃음을 되찾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별거 아닐 거 같다는 느낌이 커져갔다. 마음이 안정될수록 보이지 않던 것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정형외과에서 X-레이 촬영을 잘못한 게 아닐까? 촬영 당시 찹쌀이가 격렬히 저항했으니 잘못 찍혔을 수 있잖아? 합리적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기에 비로소 우린 웃을 수 있었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결과가 나왔다. “정상입니다”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지난 수시간을 떨었다. 염증 수치가 없고 X-레이도 정상이란다. 정형외과에서 찍은 X-레이는 서서 찍은 1컷이라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데, 종합병원에서 다양한 각도로 찍어보니 별일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고. 찹쌀이 다리의 통증은 ‘일과성 고관절 활액막염’이라는 질환으로, 감기처럼 바이러스가 고관절에 들어가는 흔한 증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좋아진단다. 



드디어 집에 간다



그때가 밤 9시였으니 하루 종일 굶은 우리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집에 가면 짜파게티가 먹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신이 난 아빠는 “다섯 봉지 콜?”을 외쳤다. 


생각해보면 경험한 적 없는 첫 자식을 키우는 아빠의 우당탕탕 스토리를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험난한 사회생활 속에서 나름의 시련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존재가 된 것이 바로 아들이다. 앞으로 부자지간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차곡차곡 쌓인 편지들은 훗날 아빠가 될 아들과의 좋은 대화 소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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