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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Sep 28. 2022

남자아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들에게 쓰는 편지 3

나도 엄마의 아들이지만 아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들 키우는  보통 힘든  아니다. 특별히 어떤 점을   힘들다고 말하긴 어렵고, 그냥 열받는 일이 다반사다.  정신세계를  길이 없어 답답할 때는 육아서가  힘이 되기도 한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오은영, 김영사)가 유명하다고 하여 살펴봤다. 책은 ‘버럭 하지 않고 분명하게 알려주는 방법’이라는 부제에 충실했고,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다룬 점이 인상 깊었다.


“너는 꽃이야. 너는 별이야. 너는 바람이야.”  
-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中


단순히 “사랑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과 달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개체에 빚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뭔가 있어 보였다. 아이에게 문학적인 표현을 은연중에 가르치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4세 아들과 수준 높은 애정 표현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그림이 상상되니 좋았다.

‘옳거니!’

지체할 거 없이 바로 써먹었다.


“찹쌀아 사랑해. 넌 아빠의 별이야!”


찹쌀이가 웃었다. 자신을 별이라 표현한 걸 알아들은 모양이다.

‘역시, 오은영 박사야! 이게 통하네.’

그런데 기다려도 피드백이 오지 않았다. 녀석과의 ‘아름다운 대화’를 상상했던 터라 답변을 재촉했다.


“너한테 아빠는 뭐야? 별? 꽃? 해님?”


능글맞게 정해진 답변을 유도했다. 이게 뭐라고 계속해서 찹쌀이 눈을 바라보며 압박했다.

‘어서 말해. 육아서에서 말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가 한 번 완성해보는 거야!’

이내 아들이 입을 열었다.


“아빠는 나의 만타가오리야.” 


‘만타가오리’. 아들에게 들은 최초의 애정 표현이 겨우 가오리라니,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알고 있는 만타가오리란 현존하는 가오리류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만타가오리의 평균 날개 너비는 3~4.5미터, 평균 몸무게는 약 1톤 정도 나가며, 최대 크기의 개체는 날개 너비가 7미터, 몸무게가 2톤씩 나간단다.

만타가오리

귀여운 아들에게, 왜, 하필이면 어류 정도로 아빠가 빗대어졌는지 나는 볼멘소리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빠가 왜 만타가오리야?”

“아빠는 나의 만타가오리야!”

“응, 알았어. 근데 왜 만타가오리냐고.”

“아빠는 나의 방귀야! 아빠는 나의 똥이야. 아빠는 나의 코딱지야. 아빠는 나의···.”


아빠를 지칭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것들이 마구 쏟아졌다. 방귀, 똥, 코딱지, 그 외 본인이 아는 모든 더럽고 무시무시한 걸 하나씩 나열했고, 놀랍게도 말할수록 녀석의 텐션은 올라갔다. 희한했다.


어느새 장난기로 가득 찬 초승달 눈에서 아빠와의 대화가 안중에도 없다는 게 확인됐다.

“됐다. 그만하자.”

아빠의 말은 이미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남자아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런 아들의 모습에 삐질삐질 웃음이 흘러나와 와락 끌어안고는 화끈하게 웃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나도 찹쌀이를 무시무시한 외모의 심해 생물에 빗대어 부른다.

“넌 아빠의 '심해큰입장어'야. 넌 아빠의 '바이퍼피시'야. 넌 아빠의 '돌묵상어'야.”

별, 꽃, 해님 등이 주는 아름다운 어감은 아니지만 뭐, 아들이 좋아하니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는 애초의 취지는 달성한 거 아닌가?


왼쪽부터 심해큰입장어, 바이퍼피시, 돌묵상어


한편으론 만족스럽다. 4세 아들 입장에서 만타가오리, 방귀, 똥, 코딱지 등은 현시점 최대 관심 분야일 테니. 굳이 해석해보면 '아빠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니까.

  

실제로 찹쌀이는 만타가오리를 좋아한다. 평상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터라 녀석은 책에서 만타가오리를 처음 접했다. 지금도 집에 있는 과학동화를 읽으며 온갖 생물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들의 일과다. 심심하기도 했겠지만 무시무시한 비주얼의 생물들을 보며 공포를 느끼고 그걸 극복하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았던 것 같다.


녀석이 자라면 만타가오리를 향한 관심도 시들해지겠지? 그 빈자리를 뭐가 차지하려나? 더럽고 무섭고 흉측한 것 뭐든 좋으니 그때도 네가 사랑하는 것과 아빠를 빗대어다오. 원래 아빠와 아들이란 게 그런 사이 아니겠니? 미사여구 따위는 생략해도 마음으로 통하는, 왠지 모를 끌림이랄까? 왜, 이런 노래도 있지 않나. "말하지 않아도 알ㅇ.." 음, 아빠가 과했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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