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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Sep 20. 2022

그들은 어떤 문장으로 세상에 남았을까?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 책리뷰

뉴욕타임스가 전한 역사적 인물들의 부고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인간희극)

유명인의 부고 기사는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들의 삶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한다. 뉴욕타임스는 171년 전 처음으로 부고 기사를 낸 이래, 유명 인물들이 사망할 때마다 명 문장의 부고 기사를 실어 그들의 죽음을 위로했다.






1844.10.15.~1900.8.25.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그의 사상이 인간의 정치, 사회적 삶을 조명하며
문명사회 전반에 걸쳐 심오한 영향을 끼치다


1900년,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뇌일혈로 타계했다. 니체는 현대 독일 철학자 중 가장 저명한 인사이자 사회주의 학파의 창시자다. 그의 신조는 고매한 염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으며, 글 속에 담긴 명석한 사고와 어휘는 적들에게조차 존경받게 했다.


니체는 학창 시절 성직자 교육을 받았음에도 기독교 교리가 자유로운 삶의 확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신앙을 버렸다. 이후 동양철학 공부에 전념,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지만 과로로 뇌와 눈에 문제가 생겨 1879년 사임한다. 그 뒤 10년간 유럽을 여행하며 작품을 집필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병으로 고생하던 말년에 탄생했다.






1889.4.20.~1945.4.30.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제국은 몰락했고, 나라의 위상은 추락했다.
이것이 독일 역사에 그가 남긴 결과물이다


“주목! 주목! 잠시 후 독일 국민에게 중요한 긴급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뒤이어 바그너의 죽음을 기린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이 흘러나온 후 아돌프 히틀러의 사망 소식이 독일 함부르크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한때 오스트리아의 방랑자였다 독일의 독재자가 된 히틀러. 왜소한 체구임에도 그의 연설과 카리스마에 6500만 독일인이 사로잡혔다.


히틀러의 선동은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발칸제국을 정복했고, 러시아 침공과 폴란드 파괴 등 쉴 새 없는 기세로 오랜 기간 유럽 대륙을 짓밟았다.






1879.12.18.~1953.3.5.

이오시프 스탈린

Iosif Stalin

혁명가이자 독재자로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의
정치적 성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다


29년 동안 소련을 통치한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크렘린 관저에서 사망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나흘도 채 되지 않아 발생한 전신순환기 및 호흡 장애 때문이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수많은 모스크바 시민이 붉은광장으로 나와 스탈린을 추모했다.


스탈린은 소련의 막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특히 독일을 무너뜨림으로써 자국 영토를 최대로 확장시켰다. 또한 한반도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발트해까지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는 위성국가들로 이념의 완충 지역을 만들었는데, 역사상 이토록 넓은 지역에 걸쳐 스탈린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다






1879.3.14.~1955.4.18.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20세기 지성의 광대한 확장에
그만큼 기여한 사람은 없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 중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잠에서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다. 76세의 대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실천적 인도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 병원에서 대동맥 파열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시신은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고 핵분열 개발을 가능하게 한 뇌를 비롯해 주요 장기를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적출한 뒤 장례식 없이 화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를 수식화하고, 공간·시간·중력에 관한 획기적 이론을 과감히 도출해냈다. 무엇보다 상대성원리라는 중력에 관한 탁월한 이론을 창출함으로써 과학적 탐구의 기반을 구축한 공로로 1921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 독일에서는 민중에 대한 압제가 극심했고,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가 극렬해지자 아인슈타인은 독일 시민권을 포기, 미국 프린스턴으로 피신했다. 그 뒤 원자폭탄 등 대량 살상무기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프린스턴 연구소에서 여생을 보냈다.






1926.6.1.~1962.8.5.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은막 스타의 삶은 그 시작과 마찬가지로
비참하고 불행하게 끝나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1962년 8월 5일 LA 자택 침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침대 옆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던 빈 약통이 놓여 있었다. 원치 않은 사생아로 태어나 시작된 음울한 과거도, 지난 십수 년간 급작스러운 명성으로 빛났던 일련의 사건도 그녀의 죽음으로 모두 막을 내렸다.


사망 전, 먼로는 수년간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다. 사람들은 진지한 여배우가 되려는 그녀의 야심을 비웃었고, 영화 <사랑을 합시다>(1961)와 <기인들>(1961)은 흥행에 실패했다. 전성기 동안 겪은 두 번의 이혼과 두 번의 유산도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에 먼로는 1961년 정신병원에 입원해 휴식을 취했지만, 이마저도 못마땅히 여긴 영화사는 그녀를 해고하며 압박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망하기 이틀 전인 8월 3일 잡지 <라이프>에 실린 마지막 인터뷰가 먼로의 유언 아닌 유언이 되었다. “행복에 익숙한 적이 없었기에, 행복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다.”






1874.11.30.~1965.1.24.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


전쟁과 정치에서뿐 아니라
언어와 인격에서도 실로 비범함을 보여주다


윈스턴 처칠 경이 자택에서 사망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향년 90세, 사망 원인은 뇌졸중. 세계사적으로 처칠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거의 6년간 노력한 끝에 1945년 추축국을 완패시킨 26개국 동맹 체제의 핵심 인물이었다. 처칠의 결단력은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 자유국가의 존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와 영국 국민에게 최고의 순간은 영국 본토가 해상과 상공에서 모두 나치에 포위되었음에도 홀로 버텨낸 1940년이다. 그는 연설가로서 영국인들의 용기를 북돋았고, 정치가로서 각국의 무기와 물자를 끌어 모아 결국 승리를 이루었다.






1899.8.13.~1980.4.29.

앨프리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의심의 여지없이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다


영화 <싸이코>(1962)로 대표되는 서스펜스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LA 자택에서 8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관절염과 신부전을 앓았던 그는 사망하기 1년 전부터 건강이 계속 악화되어왔다. 반세기에 걸쳐 수많은 심리 스릴러물을 감독한 히치콕은 인간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최고의 곡예사였다. 은근하지만 불길한 암시, 긴장감을 높이는 비스듬한 카메라 앵글 등으로 예측의 리듬을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인기를 얻었다. 일각에서는 그럴듯한 속임수와 비논리적인 스토리, 제멋대로 발생하는 우연에 의존한다고 폄훼하기도 했지만, 실타래 같은 정교한 연출로 최대한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며 비판의 소리를 극찬으로 바꿔놓았다.






1940.10.9.~1980.12.8.

존 레넌

John Lennon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열정과 강렬함으로
록을 마스터하고 전파하다


존 레넌은 거주하던 아파트에 들어가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용의자는 25세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으로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존이 등 뒤에서 두 차례 총격을 당했고, 마지막 힘을 다해 계단 여섯 칸을 올라 벽감 속으로 몸을 숨겼으나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1960년대 비틀스는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지만 레넌은 더 나은, 더 강렬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다. 1970년 결국 비틀스는 해체됐고, 레넌은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1970년대 <이매진> 등 그가 발표한 솔로 앨범은 이따금 진실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으나, 비틀스 시절만큼의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특히 부인 오노 요코가 그를 자꾸 전위적인 방향으로 부추겨 결국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는 동시대를 대변하는 명곡으로 남았다.






1930.8.5.~2012.8.25.

닐 암스트롱

Neil Armstrong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을 종결시킨 임무를 수행한
‘아폴로 11호’의 지휘관으로서 역사에 남다


달 표면에 최초로 발자국을 남겨 ‘인류의 커다란 도약’을 이루어냈던 닐 암스트롱이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인은 심혈관 수술 과정에서 야기된 합병증. 그는 사망 전 심장우회수술을 받았다. 잘 회복되고 있었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아폴로호에 탑승했던 동료 우주비행사들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암스트롱은 조용한 성격으로, 진정한 엔지니어이자 균열 시험 비행사였다. 달에 가기 전, 제미니 8호의 선장으로서 우주를 비행한 미국의 첫 민간 우주비행사였으며, 우주 공간에서 연결하는 도킹 작업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것도 암스트롱이다. 이에 전 나사(NASA) 행정관 찰스 볼든 주니어는 말했다. “역사책이 존재하는 한, 닐 암스트롱의 이름은 반드시 언급될 것이다.”






1937.4.28.~2006.12.30.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억압과 지역 분쟁으로 석유 부국인 이라크를
폐소공포증 같은 경찰 국가로 전략시키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1982년 이라크 두자일 마을 북부에서 148명의 성인 남자와 아이들을 학살한 혐의로 받은 사형선고가 집행된 것이다. 후세인은 자신을 신격화하며 국민을 선동했고, 피의 숙청으로 바스당 당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 중 가장 잔인한 것은 쿠르드족의 할랍자 마을에 독가스를 퍼부어5000여 명을 몰살하고 1만 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후세인의 공식 전기 작가 아미르 이스칸데르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탄생은 전혀 기쁜 일이 아니었고, 그의 요람은 장미나 다른 향기로운 풀로 장식되지도 않았다.”






1925.10.13.~2013.4.8.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의 길로 들어선
영국을 다시 존중받는 국가로 이끌다


영국 정계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런던에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뇌졸중. 그녀는 영국 총리가 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빈틈없는 성격으로 1979년 5월부터 1990년 11월까지 11년간 정권을 유지했다. 이는 20세기 다른 어떤 영국 정치가보다 오랜 기간 집권한 것이다. 그녀의 정치적 성공은 영국 사회에 결정적 변화를 일으켰다. 강성했던 노동조합의 힘을 무너뜨렸고, 국영기업을 매각해 일자리 90만 개를 만들었으며, 공공 주택 100만 채 이상을 입주민들에게 매도했다. 또 테러와 전쟁에 적극 가담해 국제적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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