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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Oct 25. 2022

반전! 슬램덩크는 어른을 위한 만화였다

feat. 유명호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있다. 초등학생 시절 옆집 형이 보던 만화책을 몇 번 같이 봤는데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곱씹으며 살고 있다. 내용은 쉽다. 농구 초짜 강백호가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바스켓맨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다. 그 과정에서 동료, 라이벌을 만나면서 흥미진진한 농구 경기들이 펼쳐진다.


내가 인생 만화로 꼽는 작품이 바로 이 <슬램덩크>다. 수 차례 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책이나 애니메이션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끝날 때까지 보게 된다. 만화책 전권을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소장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 세상사에 찌들어 건조해진 아저씨의 삶에서, <슬램덩크>를 보면 소년 시절의 감성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어떤 날은 가슴 뜨거워져서 일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판단이 선다. 아직 감성이 죽지 않았네! 그리고 뿌듯해하며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낸다.


<슬램덩크>는 주인공의 성장기와 더불어 명대사가 일품이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

"왼손은 거들뿐"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작품을 봤다면 누구나 꿰고 있는 대사들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친구들과 이들 대사를 읊어대며 “크으~” 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어린것이 인생 좀 아는 것처럼 으스대던 그때가 그립네)


최근에는 아저씨가 다 됐는지 결이 다른 대사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드시 다시 한번 우리 쪽으로 흐름이 온다!!"

마니아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극 중 능남고등학교 농구부 유명호 감독의 대사다. 그가 저 대사를 읊었을 때만 해도 상대팀인 북산고는 능남고를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하지만 유 감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흐름이 다시 온다는 걸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대로 얼마 있다 판의 형세는 뒤집혔다. 능남고의 반격이 시작됐고 기세는 매서웠다. 이후 세(勢)는 또다시 뒤집혀 끝내 유 감독의 능남고가 패하긴 했지만, 살벌하게 주도권이 오가는 장면은 어린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때부터 스포츠 경기를 볼 때 흐름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어도, 흐름은 한 번쯤 상대에게 넘어가리라고 여기며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라 다를까 흐름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상대가 잘했다가, 어느 순간에 우리 팀이 분위기를 탔다가, 또 저쪽 팀이 잘했다가. 흐름을 볼 줄 알게 되면서 종목과 무관하게 모든 경기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이기고 지는 건 둘째 문제고, 흐름 싸움을 관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스포츠의 묘미였다.


유 감독의 태도에는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 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잠재되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그 '때' 기다리며 시련을 인내했다는 점이다. 기약 없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그 심경이 얼마나 복잡했겠는가어릴 때는 상대팀 감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인물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생은 타이밍(때)이다. 영원한 승리도, 패배도 없다. 흐름이라는 건 돌고 도는 것이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회가 온다거나, 이따금씩 갑을의 주도권이 바뀌는 일도 벌어진다. 위기 직후에 찬스가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살다 보면 참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거고, 속전속결로 일을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경쟁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이 덤벼들 때 피해야 할 때가 있고, 상대가 무리를 했을 때 정확하게 응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유 감독처럼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고 뚝심 있는 자라면 때를 기회로 맞이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쉽게 무너질 터. 다시금 평소 성실하고 묵묵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함을 되뇌는 이유이다. 그렇게 <슬램덩크>에서 일상의 힘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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