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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민함 Nov 24. 2022

건축가의 서재를 소개합니다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인터뷰

‘고수의 생각’은 고수의 철학, 나아가 그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뜻합니다. 즉, 각 분야 고수들의 사고법을 배워 우리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으면 살면서 마주하는 생각의 지평이 넓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뷰에는 단순 신변잡기보다는 고수의 생각이 담깁니다.




온 집 안을 서재로 만든 건축가 김승회. 그의 공간을 찾았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전원주택, 이름은 '소운'. 그곳은 온통 책으로 뒤덮여 있었다. 방 하나가 아니라 어디를 가도 책이 있는 공간으로, 집 안 전체가 서재인 셈이다. 말하자면 침실과 주방이 딸린 서재인 것이다.


소운은 서재를 꿈꾸던 건축가 김승회의 작은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홀로 집중할 공간'을 갖고 싶었던 그의 꿈은 집 한 채로 커졌다. 온 집 안이 서재인 세상에 다시없는 개성 넘치는 건물로 탄생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일주일에 3일은 이곳에 머물며 일에 몰두하고 자신만의 추억을 쌓고 있다. 애초부터 공간으로서 서재보다는 그 안에 머무는 '시간'에 집중해 설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게 서재는 책을 두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머무는 곳"이라는 그의 말에서 굳센 확신이 느껴졌다. 


이처럼 집을 짓는 목적이 확실한 가운데 대지를 찾아 공간을 설계하고 건물을 지으니, 그가 원한대로 시간이 마당을 가꾸고 집에 정주(定住)하며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소운에 담겼다.


Profile. 김승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의 서재는 어떤 모습일까, 오는 내내 궁금했어요

집은 크면 큰 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요. 하다 못해 청소나 관리에 공을 더 들여야 하죠. 집이라는 게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맞는데, 애정이 과하면 인생이 좀 힘들어집니다. 그건 내 이야기입니다.(웃음)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지었는데 요즘 조금 더 작게 지었어야 했나 싶어요. 그러다가도 손님이 오면 또 괜찮아 보이고. 혼자 있을 땐 또 커 보이고.


'소운'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흴 소(素)에 구름 운(雲). '소'는 제가 좋아하는 글자입니다. 희다와 바탕을 뜻해 '흰 바탕'이라는 의미로 집 이름에 사용한 거예요.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이 있어야 하듯이, 내가 여기서 하려는 설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운'은 이 동네 이름인 운무실에서 따온 거예요.



 면적은 어떻게 되나요?

연면적이 약 132.54(40평)예요. 원래 목표는 20평이었는데 배나 커졌어요.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만든 게 주목적이었지만, 때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잖아요. 이런 상황을 반영하다 보니 점점 커졌어요. 소망은 소망을 낳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20평 서재를 만들어보려던 제 꿈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점점 커져 '서재+집'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한 서재라니, 건축가인데 그동안 왜 서재를 만들지 못한 건가요?

건축가라고 다 자기 집을 짓는 건 아닙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여기뿐 아니라 건축사사무소인 후암동 작업실도 직접 지었어요. 자기 공간을 두 채나 직접 지었다고 하면 동료 건축가들은 깜짝 놀랍니다.


서재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요?

1995년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나서도 단기간에 집중해 설계할 일이 생기면 강원도 평창의 용평리조트에서 며칠씩 머물며 작업했어요. 일할 때 혼자서 집중해야 하는 타입이라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늘 힘들었어요. 설계에 필요한 참고 도서와 각종 자료, 기타 작업용품 등 갖고 다녀야 할 짐도 한 보따리였고, 오가는 길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죠. 이럴 바엔 내 작업 공간을 갖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집중해서 일하고, 피곤하면 몸을 기댈 푹신한 소파를 갖춘 서재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휴식을 위한 1층 공간에는 오디오와 소파, 욕조가 있고, 커다란 창문은 정원을 향해 냈다.


작업실이자 서재인 셈인가요?

작업실을 갖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바로 떠오른 것이 작업실뿐 아니라 예쁜 마당과 작은 침실, 홀로 책 읽는 공간이었어요. 아담한 방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모습도 떠올렸죠. 때론 테이블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잔하는 그림까지 그렸어요. 그걸 실현한 게 이 집입니다.


짓기까지 거친 과정이 궁금해요

터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우선 강원도 평창부터 돌아봤습니다. 한여름에도 모기가 없을 정도로 선선한 기후가 특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하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거래되는 땅의 단위가 컸고, 당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땅값도 감당하기 벅찬 수준으로 올라 있었어요. 


그러다 어머니의 외가가 있던 경기도 여주를 관심 있게 보게 됐습니다. 다행히 친지에게 몇 군데를 추천받아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았어요. 남쪽으로 탁 트여 있어 전망이 확보되면서도,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했고, 근처에 실개천도 흘렀어요. 일단 터를 잡은 후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2층 서재로 올라가는 계단과 책상 하나 놓여 있는 아담한 서재


이 집에서 서재는 어떤 공간인가요?

서재는 이 집의 가장 높은 곳인 2층에 있어요.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아기에 일부러 고립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서재로 오르는 계단 옆 벽면은 일부러 책으로 채웠어요. 오를 때마다 바라보게 되는 서가의 책이 독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죠. 책을 통해 지식의 세계로 이어지고, 도면을 통해 미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직 작업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크기는 아담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로길이 1.8m짜리 책상 하나 놓고 이곳에서 일에 몰두합니다. 시야가 막혀 갑갑한 게 싫어서 문은 만들지 않고 개방적인 공간으로 놔뒀어요.


책장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나요?

서울 작업실과 학교에 책이 많고, 여기는 쉴 때 보려고 소설책 같은 문학작품 위주로 갖다 놨습니다. 가끔 오는 제자나 아이들을 위해 만화책도 비치해놨어요. 여기서는 심각한 책은 되도록 안 읽으려고 합니다. 자칫 휴식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웃음)


건축가의 관점에서 요즘 서재는 어떤 공간인가요?

영어로 서재를 라이브러리(library)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작업실이 될 수도 있고, 모여서 수다를 떠는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정해진 건 없다는 얘기예요. 결코 서가에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모니터 몇 대 갖다 놓고 게임을 하거나 주식 투자를 하는 곳을 서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부터 집을 짓는 목적이 독서와 작업 공간을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서재의 위치가 중요했다.
서재는 전체 공간의 끝에 두고 싶었다.
 
지나가는 움직임이 없어 방해받지 않는 곳,
막다른 길의 종점이고 싶었다.
이러한 전제는 필연적으로 서재를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게 했다.



지금까지 본 서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말해주세요

의뢰인 중 한 분의 서재에는 노래방 책 딱 두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게 설계를 의뢰할 때 서재로 만들 거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웃음) 개인적으로 서재의 의미가 이처럼 다양한 게 좋습니다. 그 노래방 서재야말로 아주 멋진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에게도 '내 공간'을 만드는 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확실히 내 공간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내 집을 짓기로 한 후 위시리스트를 정리했는데, 집에 대해 생각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고 크게 놀랐어요. 그토록 내 집을 원했으면서 정작 내가 생각한 것은 책상과 책꽂이, 식탁, 침실, 욕실, 마당과 테라스 등을 어떤 식을 활용하고 싶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위시리스트로는 집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집은 각 공간마다 이보다 훨씬 상세한 계획이 있어야 설계할 수 있어요. 건축 일을 하는 저도 막상 건축주가 되어 보니 그런 점이 미비했더라고요. 건축주인 저는, 건축가인 또 다른 제가 알아서 해줄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미련이 남진 않았나요?

당연히 남는데, 아쉬운 부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적응하게 되더라고요. 집과 내가 서로 맞춰지는 거죠. 나도 집에 적응하지만, 집도 내게 적응하면서 10년 지나니까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집이라는 건 그렇게 삶과 추억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가끔 생각해요. 이사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겠구나, 라고요.




삶에서 집은 어떤 의미일까요?

집도 우리 삶처럼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지금의 집인 것이죠. 그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우리 삶이 공간과 함께한 시간입니다. 저처럼 기성세대는 대부분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당시에는 전세도 1년 만기여서 1년 단위로 이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래서 집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집을 누리고 향유하는 그런 행위가 몸에 익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중년이 되어 여유가 생기니까 이제야 집이 뭐지? 어떻게 해야 집에서 행복하지?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시선이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면, 비로소 안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정주(定住)'가 점점 중요해지는 겁니다.


꿈꾸는 마지막 집의 모습이 궁금해요

이 집이 마지막 집이 될 확률이 커요. 10년간 쌓인 추억도 있을 테니, 그걸 버리고 다른 데 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소망하는 게 있다면, 제주나 남해에 10평 남짓한 작은 집을 한 채 짓고 싶어요. 추위를 워낙 많이 타는 편이라 오롯이 나를 위해 겨울을 날 만한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면 그 정도 집은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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