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z II Men
가끔은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최신 차트를 살피는 일도,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매는 일도 잠시 멈추고,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노래를 다시 재생하는 것. 내게 90년대 R&B,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의 앨범 [II]는 그런 존재와 같다.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감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편안을 안겨주는 음악이다.
1990년대 초, 당시 세상은 힙합의 거친 에너지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네 명의 흑인 청년들은 '천상의 하모니'라 불리는 화음을 무기로,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음악 시장을 평정했다. 특히 1994년 발표된 두 번째 정규 앨범 [II]는 그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앨범에는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들인 베이비페이스, 지미 잼&테리 루이스와 이제 막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던 네 멤버의 재능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담겨 있다. 앨범은 발매 첫 해에만 미국에서 1,2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고, 당시 R&B 앨범으로는 보기 드물게 팝 차트에서 장기 집권에 성공한, 상업성과 대중성 모두를 입증한 음반으로써 의미가 크다.
이 앨범을 듣는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I’ll Make Love to You’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노래고, ‘On Bended Knee’는 끝내 붙잡고 싶은 마음을 놓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다. 네 개의 목소리는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악기처럼 움직이며 감정의 결을 따라 곡의 분위기를 완성해낸다. 화려한 기교를 넘어서, 진심 그 자체가 목소리를 통해 전달될 때 어떤 울림을 주는지 이들은 증명해 낸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곡 외에도 앨범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흑인 음악의 스펙트럼이다. 펑키한 베이스라인과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Vibin'', 90년대 뉴 잭 스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All Around the World', 그리고 멤버들의 목소리만으로 재해석한 비틀즈의 'Yesterday'에 이르기까지, [II]는 단순히 발라드 앨범이 아닌, 잘 만들어진 R&B의 선물세트와 같다. 앨범 중간에 삽입된 'Khalil'은 투어 중 총격으로 사망한 로드 매니저를 추모하는 곡으로, 앨범에 개인적인 깊이와 진정성을 더하는 중요한 트랙이기도 하다. 이처럼 [II]는 팝 친화적인 트랙부터 전통적인 소울 발라드, 실험적인 아카펠라까지, R&B라는 장르 안에서 이들이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서 14주 연속 1위를 하고, 그래미 상을 휩쓸며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앨범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훌륭한 명반'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90년대의 끝자락이 넘어서야 태어난 나에게, 이 음악은 직접 겪은 기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좋은 음악은 시간을 이겨내기 때문이 아닐까.
보이즈 투 멘의 음악은 90년대라는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모든 이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사랑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을 노래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이들의 노래 속에서 위로받고, 또 사랑을 배운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을 들을 때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정하고도 치열할 수 있는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