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했던 재료들이 환골탈태하는 날.
오늘의 메인은 <피자일까 부침개일까>.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딱히 손이 가지 않는, 외면당하던 식재료들이 냉장고에서 구원을 기다린다.
얼굴도 모르는 최 과장님의 나눔으로 신문지에 싸여 냉장고를 차지하던 루꼴라.
돼지고기 함량 90% 이상이라 믿고 샀는데 식감도 맛도 냄새도 영... 별로였던 소시지.
싸고 맛있고 영양 있는 간단한 맥주 안주로 샀는데 짠맛을 넘어 쓴맛의 우주로 간 올리브가 그들이다.
이것들로 무얼 만들어야 할까?
이것저것 재료들을 섞어서 새로운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이디어가 맴돈다.
그러다가 흔하디흔한 루꼴라 피자도 부침개도 아닌 것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다행스럽게 집에는 튀김가루도 있고 향이 너무 좋아 샀는데 대용량이라 써도 써도 줄지 않던 바질가루,
그리고 매콤한 향만 나고 맵지 않은 고추가 있다.
쓸 정도로 짠 올리브는 물에 담가서 짠 기를 빼고 편으로 썰어 놓고, 진심으로 맛도 없지만 향도 지독한 소시지도 청홍고추와 함께 편으로 썰어 놓는다. 그리고 루꼴라도 씻어서 물기 털고 대기.
다음은 반죽.
바질 가루를 듬뿍 넣은 반죽은 화전을 부칠 수 있을 정도로 묽게 묽게 만들어서 놓는다.
이제 달궈진 팬에다 살짝 기름을 두르고 맛없는 소시지, 올리브, 청홍고추를 골고루 깔아 놓으면 지글지글 지글 소리를 내는데, 이때 서두르지 말고 루꼴라를 골고루 펴놓는다.
또 묽은 반죽으로 모든 재로를 연결시키겠다는 듯 휘~휘~둘러주고 뚜껑을 덮어서 익힌다.
불은 중간보다 조금 약한 불로 놓고 잠시 기다리다가 반죽 익었겠다 싶으면 뚜껑 열어서 뒤집기 한 판!
반대편도 잘 익힌 다음에 스-윽 미끄러지듯 담아 내면 한참 피자 좋아할 나이인 딸은,
“우와~ 희한한 걸 만들었네!” 하고 맛있다며 먹고,
어제 마신 술독으로 속 뒤집힌 남편은,
“우욱- 난... 나중에... 먹을... 게”라고 하는,
피자도 부침개도 아닌 그 중간 즈음 요리가 오늘도 포만감을 준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올리브 덕에 적당히 짭조름하고 바질과 루콜라 덕분에 꼭 치즈 빠진 유럽 피자 먹는 기분이다.
이것에 맥주 한잔 찌끄리면 딱 좋겠지만 술은 낮술이 최고니 저녁에는 참고, 내일 점심으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