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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Apr 19. 2023

기억나시나요? 그때 그 시절 집에서 재운 김 맛.

집안 가득히 참기름 향과 구워진 김 냄새.


<오늘의 메인은 집에서 재운 김> 너얏!

왜 그랬을까? 정말 귀찮게도 어렸을 때 김 재우고 굽는 건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오늘은 그 기억을 소환하려 했으나 맛에 대한 기억만 남았으니 생김을 마주한 나는 퍽 당황스럽다.



우선 집에 기름 솔이 없으므로 위생장갑을 장착하고 기름을 김에 발라준다.

거친 면? 부드러운 면?

에라, 모르겠다.

어릴 적 어느 면에 기름을 발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무지성으로 거친 면을 선택해 기름을 발라보니... 거친 피부에 보습 오일 바르는 기분이다.

‘너... 매우... 건성이구나...’

그런데 한 장 한 장 장인 정신으로 기름을 바르고 있자니, 김을 너무 많이 꺼낸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

기름을 바르고 넘기고 바르고 넘겨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5분짜리 영상을 틀어 놨는데 거의 끝나갈 지경이다.

‘그냥 나머진 다시 봉투에 넣을까? 말까?’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 드디어 기름이 발라진 반짝이는 김이 보였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 것.

이 슬로푸드는 이제야 절반 온 것이다.

다음 차례는 소금.

맨 위 첫 장에 소금을 골고루 뿌리고 쌓아놓은 김 더미의 맨 밑으로 넣어준다.

조금 더 잰 손놀림으로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

‘끝날 게야... 곧...’

그리고 다음 차례, 재운 김 맛의 화룡점정이 되어 줄 대망의 김 굽기!

아주 섬세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김이 금세 타 버리기 십상이니, 두 번째 영상은 대충 귀로만 듣기로 하고, 달궈진 팬에 재워 놓은 첫 김을 얹는다.

제법 김이 쪼그라지며 구워진다.

이제 중요한 건 리듬.

......

20여 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다른 반찬은 꿈도 못 꾸겠다...어여 먹고 뻗어야지......’


적당하게 간이 맞춰진 김으로 갓 지은 밥을 살포시 감싸 입에 넣으니 짠맛, 고소한 맛과 불향이 덮여진 김향이 어우러진다.

나머지 밑반찬은 그저 거들뿐... 집에서 재운 김을 처음 먹어보는 딸은,

“어머, 시장에서 파는 김 같아”라면서 눈이 동그래진다.

오늘의 메인 재운 김은 내 다리에겐 뻐근함을 주었지만, 입에겐 황홀감을 주었고, 위장에겐 흰밥 두 그릇의 만족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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